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j contentree’ 빌딩 5층 사무실 가장 안쪽 자리에 강주연(여·42) 편집장이 앉아있다. 까만 타이즈에 헐렁한 니트를 입은 모습이지만 진분홍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과 붉은 입술에서 패션잡지 편집장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2010년부터 한국 패션·뷰티잡지 ELLE(엘르)를 이끌고 있는 그녀를 만나 패션 편집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엘르의 편집국은 패션·뷰티·헬스·피쳐 앤 라이프스타일팀과 별도의 디자인팀으로 이뤄져 있다. 각 팀에는 에디터와 팀장이 있으며 편집장이 이를 총괄한다. 편집장의 업무 중 가장 주된 것은 잡지 콘텐츠를 구성하는 일이다. 편집장은 팀끼리 진행하는 기획회의를 통해 나온 아이템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를 하는 에디터에게 배당한다. “매달 20일에 잡지가 발행되면 이틀 정도 쉬고 바로 다음 호 기획회의에 들어가요. 회의에서 수합된 아이템을 선택하고, 디벨롭시켜 배당하면 본격적으로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되죠.”
                
잡지가 발행되기 일주일 전인 마감기간에는 야근과 밤샘이 이어진다. 마감기간 동안 에디터들은 그간 취재한 사진과 글을 편집해 초안인 대지(臺紙)를 만든다. 대지가 각 팀의 팀장을 거쳐 편집장에게 넘겨지면, 편집장은 이를 일일이 보고 수정한다. “신문과 달리 잡지는 사진 편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 대지를 수정할 때 글뿐만 아니라 사진의 위치와 크기, 구성까지도 체크해야 해요” 일명 ‘죽음의 기간’이라 불리는 마감 주일에는 끊임없는 야근을 버텨낼 체력이 필요하다. “마감 기간에는 일주일 정도 회사에서 살다시피 해 육체적 업무 강도가 높아요. 패션지의 화려한 면모만 보지 말고 체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직업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잡지를 구성하는 일 외에도 편집장은 매년 정기적으로 패션·뷰티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각종 패션 위크에 참석하고 해외 출장을 간다. 하지만 영화 속의 패션지 편집장처럼 화려하게 해외로 떠나는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 “1년에 2번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 위크를 참석하는데, 보통 한 시간에 열 개가 넘는 쇼를 보러 다녀요. 일정이 꽉 차있을 땐 끼니를 거르는 건 기본이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요.”

각종 행사를 통해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1년 패션 트렌드를 파악한다. 항상 남들보다 한 계절 앞서는 그녀는 2~3월에 있는 패션 위크에서는 가을·겨울 컬렉션을, 9~10월에는 이듬해 봄·여름 컬렉션을 미리 파악한다. “잡지 콘텐츠를 총괄하는 편집장은 누구보다 트렌드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독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요.”

강주연 편집장은 독자뿐만 아니라 패션 업계에 대한 책임감도 항상 의식한다. 그녀는 언론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처럼, 패션 잡지를 이끄는 편집장에게는 패션산업에 대한 이해와 책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잡지사의 1차 고객은 독자지만 2차 고객은 광고주와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에요. 2차 고객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독자에게도 풍부한 정보를 줄 수 있어 패션 분야에 대한 산업적 책임을 자각하는 사람이 좋은 편집장이 될 수 있어요.”

또한, 그녀는 단순히 패션만 좋아해서는 패션지의 구성원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패션의 본질은 사람의 몸에 입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옷 스타일만을 논하는 건 편협한 시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이런 디자인과 실루엣을 선호하는지, 이 문화가 뭘 말하는지를 알아야 패션잡지 편집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단순히 패션을 좋아해서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오래 못 가요. 본질적으로 그 옷을 입는 사람, 그 사회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수반돼야 해요.”
                
강주연 편집장은 영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남들보다 다이나믹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못 만나봤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고, 제일 좋은 상품을 가장 빨리 만나보기도 하죠. 패션에 대한 애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직업을 추천해 주고 싶어요”

글·사진│송민지 기자 alsel@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11 04: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