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숙명
데스크승인 20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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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속이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어휘에 매달려 종일 끙끙거릴 때가 가끔 있다. 운명(運命)과 숙명(宿命)도 그 중 하나다. 이 말은 분명 유의어(類義語)이긴 하지만 동의어(同義語)는 아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그 뜻이 비슷하다. 그러나 흔히 ‘운명을 개척하다’라는 말은 쓰이지만 ‘숙명을 개척하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초인간적인 힘에 의하여 정해진 목숨이나 처지’가 운명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숙명이니 어찌 그 뜻을 구별할 수 있으랴. 그러나 똑같은 말이라면 한자(漢字)가 다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숙명은 宿(잠잘 숙)의 명(命)이어서 타고난 불변의 命이다. 그러나 운명은 運(운전할 운)의 명(命)이어서 변화와 바뀜을 의미한다. 따라서 후천적인 것이지 타고난 것은 아니다.

이를 잘 표현한 말이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어서 피할 수 있지만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어서 피할 수 없다’이다.
내가 아내와의 만남은 운명적 만남이지만 내 아들이 나와의 만남은 숙명적 만남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일이 잘 안되거나 실패했을 때 ‘그건 내 운명이야’라며 자위하고 변명하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피할 수 있는 화살인 것이다.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 숙명이다. 태어난 것까지는 숙명이지만 그 후의 삶은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실패가 숙명적인 것은 아니다.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소인의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후천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이다. 삶은 다양한 영향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천적인 것이 절대적 영향력이 없으며 후천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이다.
겨울이 오고 추워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추위를 이겨내는 것은 인간의 몫인 것이다. 삶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의 조화이며 그것을 조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힘이니 괜히 숙명론에 빠져 술에 젖지 말 일이다.
오늘도 높은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 이 부모 이 땅에 태어난 것까지만 숙명이다. 이제부터는 운명,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홧팅!

이 한편의 기사가 많은 분들에게 힘과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 희망이다" - 성균관서당에서 가져옴-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10 01:4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