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어느 실내악단의 첫걸음 – GAIA QUARTET 1ST CONCERT을 보고
(2010/7/11/7:30pm)
아, 실내악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이제 슬슬 클래식 음악에 재미를 붙여볼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실내악이다. 보통 클래식 공연은 교향악-협연-자신이 좋아하는 악기의 독주나 성악 공연의 순서로 접근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은 정해진 순서가 아니고 보통 공연이 아닌 음악 매체를 통해 클래식을 접하게 되는 순서와 비슷한 것이다. 실내악이라는 것이 뭔가 오케스트라 같이 화끈한 맛도 없고 성악 공연과 같이 다른 형태보다 쉽게 그 실력을 가늠하고 공감하기 쉬운 것도 아닌 어찌 보면 상당히 특색 없는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실내악은(특히 국내에서) 흔히 클래식 애호가들이나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공연으로는 실력 있는 꽃미남 연주자들로 구성된 ‘디토 앙상블’의 ‘디토 페스티벌 시리즈’나 작년에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나섰고 올해에도 공연될 예정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이끄는 ‘7인의 음악인들’을 들 수 있겠다. 이 두 공연은 대중과 음악계의 호평을 받은 매우 성공적인 공연이다.
앞서 예시한 이른바 성공한 실내악 공연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국내에서 실내악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큰 요소는 ‘실력 있고 스타성 있는 솔로이스트들’의 만남이다. 실력파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그 실력뿐 아니라 호감형의 외모, 다양한 사연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다른 멤버들 역시 실력 있고 잘 생긴 외모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 잡았고 결국 이는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국내에서 가장 애호가 층이 얕다고 여겨지는 실내악 공연을 수 차례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7인의 음악인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명망 있는 음악가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필두로 하여 가장 실력 있고 주목 받는 신구 음악인들을 한 공연에 멋들어지게 엮어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국내 최정상의 솔로이스트 개개인의 역량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음악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을 지긋이 비틀어 버린다.
그러나 실내악 판에서 이러한 대형 공연만이 득세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일단 이런 대형 공연들이 한 해에 다룰 수 있는 레퍼토리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이미 형성된 대중과의 관계 때문에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된 교감을 추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보통 이런 공연들은 첫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기 위해 ‘미묘하게 정해진 틀’안에서만 무엇을 시도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공연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그 공연의 성격에도 선입견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공연들은 대체로 티켓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애호가가 되기 전, 공연장에 마음 편히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B, C석 티켓을 사 들고 올 것이란 것만큼 커다란 오해는 없다. 그들에게 그런 공연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다른 공연들은 뭐가 뭔지 몰라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그 한 두 공연을 보지 못해 사람들은 그 해 실내악을 보지 못하고, 보더라도 많이 보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실내악에 대한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또한 이런 공연들이 내놓은 실내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다른 공연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문제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은 참신하고 내실 있는 많은 실내악 주자들의 등장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자리를 잡아나가는 일일 것이다. 대중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레퍼토리가 다양해지고 비교할 수 있는 많은 케이스들이 생겨날 때 비로소 그 판은 살아난다.
GAIA QUARTET 1st Concert, 2010/7/11, 7:30pm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이제 좀 힘을 빼고 본격적으로 본 공연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이 공연의 일정을 누군가가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멋진 현악사중주단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 문화적인 충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도 나는 제일 먼저 공연일자가 휴일일 것, 그리고 적당한 가격, 위치 등의 비문화적인 요소를 고려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몇 개의 공연이 물망에 올라 그 뒤에 연주자의 프로필과 프로그램을 살펴본 뒤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위에 거창하게 실내악이 어떻네, 저떻네 했어도 나는 이렇게 한낱 클래식 입문가일뿐인 것이다)
아, 그리고 절대 연주자의 외모를 고려한 것도 아니었음을 밝힌다. ‘디토 앙상블’이 꽃미남 군단을 결성하여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지만 ‘가이아 쿼텟’ 역시 뒤질세라 만만치 않은 미모의 여성 연주자들 네 명이 모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매를 위해 살펴본 이 공연의 소개는 담백하기 그지 없었다. 각자의 프로필 소개, 공연 정보. 끝. 심지어 나는 그 담백한 정보에서도 제대로 공연 시작 시간을 체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여 거의 연주자들과 함께 입장하고 말았다.(여담이지만 나는 한산한 로비를 보고 참 일찍 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각설하고, 모두 서울시향 단원이기도 한 각 연주자들의 프로필은 이러하다.
Violinist 최해성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조기졸업하고, 뉴욕 맨하탄스쿨에서 석사를, 스위스 로잔 컨서바토리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함께 솔리스트 디플롬을 취득하였다. 서울심포니 오케스트라, 군산시향, 루마니아 타미소아라 오케스트라, 로잔 챔버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고, 유럽 다수의 페스티발에서 솔리스트로 초청받아 윤이상과 여러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였다. 피에르 아모얄, 하이츠 홀리거 등과 실내악을 같이 하였고, 카메라타 로잔의 멤버로서 다년간 실내악 연주활동을 하였다. 제네바 꽁뜨르샹 악장과 볼로냐 앙상블 폰타나믹스의 리더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현재 서울시향 단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Violinist 정지혜
선화예고 1학년 재학중 도미하여 메네스콘체르토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메네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뉴욕 닥터스 오케스트라와 초청연주자로 협연하여 뉴욕 데뷔 연주를 하였다.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여 카네기홀, 링컨센터 등에서 연주하였으며, 킬링턴 음악축제, 인터내셔널 아카데미 축제 등 아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유럽지역에서 실내악을 연주하여 명성을 쌓아 왔다. 메네스, 뉴욕 챔버오케스트라, 예일 필하모니아의 수석과 악장으로 활약하였고, 에머슨 콰르텟, 도쿄 콰르텟, 줄리아드 콰르텟 등 마스터클래스에서 연주하였다. 김진, 토드 필립스, 강효를 사사한 그는 전액 장학생으로 메네스 학사와 예일 석사과정을 마친 후, 아티스트 디플롬을 이수하고,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Violist 김성은 Grace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재학시 스위스로 유학하여 제네바 국립음악원을 일등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인터네셔널 메뉴힌 뮤직 아카데미(IMMA)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IMMA 재학시 카메라타 리씨에서 비올라 리더로서 활동하고, 솔리스트로서 유럽, 캐나다, 일본,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수차례 연주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귀국독주회를 가졌고, 클래시컬 플레이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가제전에서 연주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Cellist 박은주
일찍이 국내에서 이화경향, 조선일보,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서울예고 재학중 프랑스로 유학하여 불로뉴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파리 국립음악원 전문연주자 과정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일등으로 졸업하였으며, 이자이 콰르텟 사사로 전문 실내악 과정을 수료하였다. 파리 국제콩쿠르 첼로, 실내악부문 대상,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콩쿠르 일등상을 수상하였고, 젊은 연주자들에게 주어지는 독주회 등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로스트로포비치, 이자이 콰르텟 등과 연주하였다. 또한 유럽 유수의 페스티발에 초청 연주자로 참가하였으며, 파리 라벨음악원에서 실내악 강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비평가협회 선정 금호아트홀 초청 독주회를 가졌고, 현재 예원, 서울예고 강사, 앙상블 WE, 서울시향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들 수석에 장학생에 외국에서 십 수년을 공부하고 돌아왔다는 화려한 프로필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압도적이다. 최근 서울시향이 가지게 된 지위를 보자면 그들은 좋은 연주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그들은 아직 검증된 스타는 아니기에 공연을 보기 전에는 사실 평범한 퀄리티를 예상했었다. 다음은 프로그램이다.
P r o g r a m
Johann Sebastian Bach
Selections from Art of Fugue
Felix Mendelssohn String Quartet No.6 Op.80 f minor
Allegro vivace assai
Allegro Assai
Adagio
Finale: Allegro molto
Bela Bartok String Quartet No.3
Prima parte:moderato
Seconda parte: Allegro
Recapitulazione della prima parte:Moderato
coda: Allegro molto
Robert Schumann String Quartet No.1 a minor
introduzione:Andante Espressivo-Allegro
Scherzo:Presto-Intermezzo
Adagio
Presto
급하게 자리를 잡고 숨을 좀 고르느라 첫 곡은 마음 편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봤다. 그러고 나니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용하기만 한 곡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가 자연스러운 탓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음이 매우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델스존의 곡은 전체적으로 매우 빠르고 격정적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바이올린에서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바이올린 두 대가 정말 온 힘을 다해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나가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끊어지면서 음악이 흩어져버릴 것 같다는 불안함이었다.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끊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준 것은 묵직한 첼로의 선율이었다. 사실 잘 모르는 곡이기 때문에 연주에서 내가 느낀 미묘한 불안함이 원래의 곡에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격정적인 연주로 인해 생긴 필연적 부산물이었는지는 다른 연주를 들어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산한 불협화음으로 시작하는 바르톡의 곡은 개인적으로는 이 공연의 백미였다고 생각한다. 이곡은 여타 실내악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거니와 연주자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해야 함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화음을 쓰지 않아 난해한 가운데서도 그 전반적인 분위기는 통일시켜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곡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곡을 연주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안정적이었던 것은 물론 이 작곡가와 곡을 잘 모르는 내게도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멘델스존의 곡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훌륭한 연주였다.
앞의 열정적인 곡 덕분인지 슈만은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다. 공연의 끝으로 달려가는 마지막 곡에서 연주자들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곡을 음미했다. 아름다운 선율의 3악장은 느린 템포 때문에 늘어진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곧 깔끔하게 추슬러 마무리해주었다. 밝고 경쾌한 4악장에서는 연주자들 모두가 자신감 넘치게 화려한 연주를 선보인다. 마지막 음을 강렬히 마무리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큰 박수를 쳐주었다.
커튼콜은 두 곡. 곡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비밀. 대신 사진으로 갈음한다.
밖에 나오니 리셉션. 다른 공연이 없었기에 당연히 이 공연의 리셉션이려니 하고 일행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많은 사람들로 흥성흥성한 리셉션 사진도 함께 올린다. 분명 2주일 전인가 예매할 때는 자리가 많았는데 오늘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객석이 꽉 찼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이 공연 리셉션이 아니라고, 엄한 곳에서 뭐 먹고 온 거라고 누군가 제보한다면 이 부분은 냉큼 지울 것이다. 그리고 머나먼 망명길에...)
네 명의 젊은 연주자들이 내놓은 꽤나 참신한 실내악제안
공연의 감동에서 빠져 나와 다시 앞에서 이어지는 딴 소리를 하자면, 이 현악사중주단에게 더 많은 기대가 되는 것은 바로 구성원들이 모두 서울시향의 단원으로 그 팀웍이 끈끈할 뿐 아니라 자주 음악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으리라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에게 실력 있고 전문적이며 지속적인 실내악단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자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나가는 것은 분명 다른 연주자들이나 관객들에게도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본 공연의 프로그램 북에 나와 있는 글귀이다.
Quartet Gaia의 정신은 기존의 현악사중주곡들을 진지하고 참신하게 재해석하고,
고전음악에서부터 포스트모던, 전자음악, 국내외 작곡가들의 창작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더불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형태로 다양한 음악을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위의 기본정신은 적어도 이번 공연에서는 매우 잘 지켜졌다고 느꼈다. 프로그램에는 고심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났고,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향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불한 티켓의 가격은 공연에 대비해 매우 저렴했다. 티켓의 가격이 아무리 저렴하다고 할지라도 질 낮은 공연은 보고 나면 그마저도 아까운 것이 당연한 일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좋은 공연을 너무 좋은 가격에 잘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결코 리셉션에서의 음식은 함께 고려하지 않았다.)
‘가이아 쿼텟’은 서울시향의 단원으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연주자로서 자신들이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음악적인 욕심을 풀어내고, 사람들에게는 잘 짜진 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실내악이 어떤 것인지를 다양한 장르를 통해 보여주겠노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스타 연주자들의 실내악 공연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매우 화려하지만 몇몇 태생적인 문제들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 ‘가이아 쿼텟’은 충실한 교감과 연습으로 만들어내는 탄탄함,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 전석이 동일한 낮은 가격(이 바닥에서 오로지 자신의 예매 순서로 자리가 결정되는 친절한 공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비록 그 대안이 매우 정석적이지만 쉽사리 시도되지 않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또한 매우 참신하다.
이들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p.s 1 upcoming concert는 2010.10.23(토) 카메라타 연주
p.s 2 개인적으로 오늘의 베스트 연주자는 첼로 박은주 님.
p.s 3 좋은 공연을 소개해준 노트님과 함께 가서 공연도 보고 뒷풀이도 한 Robb님 감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5: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