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간식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니요.”
“간식이란 사이 간, 먹을 식, 그러니까 아침, 점심, 저녁, 즉 끼니 사이에 먹는 음식이에요.”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간식만 일곱 번이나 먹는다더군요.”
“그랬나요. 간식을 줄여야겠네요.”
“아니에요. 이제부터는 간식을 없앨 거예요.”
“저보고 하루에 세끼만 먹고 살란 말인가요?”
“하루에 열 끼를 먹으면 되지요.”

 그는 나를 잡지 기사에서 보았다고 했다. 잡지는 요리 잡지, 먹보들의 식취향을 주제로 한 기사였다. 그제야 두 달 전 쯤 한 기자가 나를 찾아오더니 나의 식취향과, 식습관, 식성 등을 취재해갔던 기억이 났다.
 나는 낯선 자의 방문이 달갑지 않아 차갑게 만남을 거절했지만, 그는 내 집 앞을 떠나지 않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바라던 문이 열리자 그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이 집을 찾아냈는지 아냐며 하소연을 늘어놓더니, 잡지에서 본 그 사람이 맞다며 연신 미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잡지에 나왔던 그 분이군요. 정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물론이다. 나만큼 뚱뚱한 여자는 우리나라에 두 명밖에 없으니. 이 나라에 이백키로가 넘는 여자는 단 둘 뿐이고, 기네스에 올라있는 그 여자는 나보다 보통 여자 한 두 명의 몸무게만큼 더 나갔다.

 나는 당신은 누구며 왜 나를 찾아왔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대신 잠시만 주방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벌써부터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데 질려 마음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소파에 너지러졌다.

 그가 주방에 들어간 지 한 십분 쯤 지났을까. 순간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미세한 향기가 슬그머니 내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향을 더하더니 내 온몸을 사로잡고 있었다. 후각이란 그 어떤 감각보다 쉬이 마비되는 법. 나는 그 아름다운 향이 나를 마비시키기 전에 눈을 감고 냄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닫힌 눈꺼풀과 열린 암흑의 상상의 장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콧구멍을 통해 들어온 후각의 정보가 내 머릿속에 총천연색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얀 접시와 빛나는 칼과 포크, 그리고 접시의 가운데에 위치한 짙붉은 그것. 그것은 고기였다. 고기는 마치 내 눈앞에 있는 것보다 더 가까운 듯이, 마치 머릿속 어딘가 그림을 그리는 곳 바로 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는 멀리 주방에서 단지 냄새만으로 내 머릿속에 음식을 그려내었다.

 후각과 시각이 동시에 나를 찔러댔기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것은 당연했다. 나는 한 발자국도 힘든 무거운 몸이었지만, 힘겹게 끌고 주방으로 갔다. 그 냄새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것이 내는 냄새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 먹어봐요. 송치 넓적다리에요. 서귀포에서 직접 공수한 최고급 송치에요. 글쎄, 고기인데도 시원한 맛이랄까요.”
 “송치가 무엇인가요?”
 “소새끼를 뜻해요. 암소의 뱃속에 있는 것부터 난지 세 달이 안 되는. 양이 적기 때문에 주로 갈아서 회로 먹지만, 그래도 육고기인 만큼 구워먹는 맛에는 비할 바 아니지요.”
 
 글쎄, 과연 내가 그날, 그 송치의 넓적다리의 맛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어떤 표현도 그 맛에 대한 거짓이자, 속임수였다. 감각이란 본디 쉬이 휘발하여 훗날 날조된 형용사를 덮어 씌워도 자신조차 거짓임을 눈치 못 채는 법이지만, 그 날의 맛은 내 혀가, 혀끝부터 목구멍 끝까지, 알갱이 하나의 맛까지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지라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행여 내가 그날 그 순간의 송치의 맛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단어를 창조해낸다면 모를까.

 초면의 남자가 지켜보는 것도 잊고 나는 미친 듯 먹어댔다. 그 맛이란, 그 송치의 맛이란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불허하였다. 미친 듯이 먹고, 또 먹다보니 어느새 접시 위엔 내 늘어진 침 덩어리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 먹을 수 없을까요. 제발. 단 한 점이라도.”
“미안하지만 오늘 준비한건 이게 다에요. 하지만 다음에는 더 맛있는 고기를 가져다줄게요.”
“정말인가요. 다음에도 이런 고기를 맛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전 고기를 잘 다루거든요. 어때, 맛있었나요?”
“글쎄요, 그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향을 내는 음식은 처음이에요. 그 냄새가 얼마나 맛있는지, 위에 있는 지금도 이렇게나 맛있는 냄새를 올리고 있어요. 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최고급 송치에 최고의 요리사. 물론 맛도, 냄새도 좋을 수밖에요. 단지 맛만 좋은 음식이 아니에요. 내 음식은 건강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벌써 당신도 풍기는 향이 달라졌어요. 건강해졌다는 증거지요.”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요리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응당 그와의 만남에서 거쳐야 할 절차조차 잊고, 아쉬움에 연신 헛입을 쩝쩝댈 뿐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였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그러고 보니 제가 묻는 것을 깜박했네요. 제 집에는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송치, 맛있었죠? 전 당신께 그런 좋은 음식을 드리러 왔어요. 제 손으로 직접 고르고, 제 손으로 직접 조리한 최고의 고기를 말이에요.”
“왜 나에게요?”
“잡지에서 당신을 보는 순간 느꼈어요. 이 세상에서 내 고기를 당신만큼 맛있게 먹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내 음식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은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기만 해요. 나는 그저, 당신이 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제 음식을 원 없이 먹어줘요.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에요.”
“자신의 음식을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글쎄요, 나는 타고난 요리사이거든요.”
 기이한 상황이었다. 나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나를 찾아 온 요리사,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고기, 그 맛이 주는 충격. 이쯤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뚱뚱한 여자인 나는 먹는다는 것에 중독되었다. 그것은 생생한 기억이 다다를 수 있을 만큼 설익은 과거가 아닌, 아주 먼 까마득한 과거부터 길들여진 습관이자, 중독이었다. 흔히 남들은 먹는 것에 미쳐버린 내가 굉장한 식욕을 가졌거나, 맛에 대해서 집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나는 그런 것들엔 별 관심이 없어진지 오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굳이 맛있는 음식을 찾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식욕이란 것의 욕구를 상실하였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집어서 입어 넣고, 그것을 소화하는 과정, 즉 ‘먹기’라는 행위에 중독돼 버렸다.

 그렇기에 내가 결국 내 소화기관을 거쳐 오물이 되고 말 음식이나, 그 맛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음은 다양했다. 난 그저 내 소화기관이 버텨낼 수 있는 그 무엇을 내 입에 넣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를 취재해갔던 기자는 내 답변에 깨나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댔고, 나를 찾아온 그 역시도 맛에 신경 쓰지 않는 뚱보라는 아이러니함이 눈에 박혔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진정한 맛이 무엇인지, 또 그 맛에 중독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단 한 끼의 음식만으로 훌륭히 자신의 욕망을 채워냈다. 나는 수 년 만에, 맛이라는 칼날같이 예리한 감각에 베여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내게 느꼈던 큰 호기심.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뚱보라는 사실. 그가 나를 찾은 지 두 번이 되는 날, 그는 내게 말했다.

 “당신을 이 나라에서 가장 뚱뚱한 여자로 만들고 싶어요. 바로 내 음식으로요.”

 글쎄, 나는 내가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뚱뚱한 여자라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그 순위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있다 한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극한의 지점까지 내몰다 못해 상실하였다는 수치심 정도. 하지만 그런 가치관과 자기애는 내 곁을 떠난 지 오래이기에 나의 몸무게의 전국적인 순위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어찌 보면 애초에 뚱뚱해지기 위해 폭식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그 순위가 무용함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그가, 내가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음식을 통해 내가 더욱더 살지고, 살지다 못해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는 그 날까지 나를 몰아가고 싶어 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요? 왜 내가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거죠?”
“다시 말했지만 나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당신이 내 음식을 먹는 것이에요. 내 음식을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요. 하지만, 정말 내가 훌륭한 요리사이고, 훌륭한 음식을 당신에게 준다면 분명 당신에게도 변화가 있을 거예요. 글쎄요, 폭식과 과식이 건강의 적이라고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지금 매우 건강하지 못해요. 당신의 살들이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거든요. 날숨은 탁하고, 피는 끈적하며, 혈관은 날로 좁아가죠.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과식 때문만은 아니에요. 자, 저기 주방에 널린 쓰레기들을 봐요. 싸구려 과자, 인스턴트 음식, 진쌀로 지은 쌀밥. 저런 쓰레기들을 먹기 때문에 당신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에요. 자, 내가 만드는 최고의 음식들을 먹어봐요. 당신은 이제 건강해질 거예요. 좋은 향기도 날 테구요. 그리고 물론, 좋은 영양에서 비롯된 건강한 살도 더 붙겠지요. 난 확신해요. 내 음식은 당신을 더욱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살찌울 거예요. 당신이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타이틀에 불과해요. 내가 훌륭한 요리사임을 증명하고, 당신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음식을 제공했다는 작은 보상이랄까요.”

 그것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맛을 깨달아 버린, 그 무엇보다 맛을 갈구하게 된 나와, 내게 그 맛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그. 우리 둘의 욕망은 기묘하게 그 시작과 끝이 닿아있었다. 그리고 가장 뚱뚱한 여자란, 그저 우리의 얽힌 욕망에게 지워지는 작은 훈장일 뿐. 그의 말은 그간 먹기라는 일차적인 욕망에만 충실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온 나에게 너무나 달콤하게 들렸다. 그는 이미 나의 일부분이 된 과식의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의 완성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었다.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식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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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열 끼를 먹으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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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짐과 동시에 강한 허기와 이를 채워질 거센 식욕이 찾아왔다. 어차피 이른 아침부터 이 외진 집을 찾을 사람은 그 밖에 없을 터, 나를 위해 고기를 조리하는 자, 그는 어느새 떠올리기만 해도 내 입에 한바가지 침이 고이게 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문득 종소리만 듣고도 입에서 침을 뚝뚝 흘렸다던 한 과학자의 개가 떠올라 소름지기도 했지만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볼 일이었다.

 그가 나를 찾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 사이에 몸이 꽤 무거워진 것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문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이 무릎이 몸뚱이를 지탱하려나 싶었지만, 어느새 손이 문고리를 돌리고 있었다.

 이런, 두터운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 예상 혹은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자리에는 K 가 생글생글 웃으며 잘지냈느냐 묻고 있었다. K. 그가 오기 전까지 유일하게 이 집을 드나들던 남자. K를 본 지도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가 온 뒤로 나는 K 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K는 내가 속한 구의 구청과 연계된 사회복지회사의 직원이었다. 그 회사는 구와 연계하여 구내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맡았고, 그중 나를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K 였다. 글쎄, 내가 과연 나라에서 지정하여 챙겨줄 정도로 도움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 왔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쨌든 나라는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그 여파로 순식간에 고도비만이 되어버린 홀로된 이십대 여성의 안위를 챙기려 노력하였다.

 K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으로 찾아와 도움을 주고, 나의 건강을 살폈다. 도움이래야 식료품을 사다주거나, 더러워진 집을 청소해주는 수준에 머물렀기에 나로서도 싫을 이유가 없었지만, 유독 건강에 관련하여 그는 집착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는 마치 나를 비만의 늪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신의 소명이라도 띠고 있는 듯 했다.

 “저도 한때 엄청난 비만이어서 알고 있어요. 살을 뺀다는 것은, 그래요. 그저 단순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뭐랄까, 엄두가 안 난다고 해야 하나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니까요. 수  년간 찌워온 살을 뺀다는 것, 얼마나 부담이 심한지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봐요, 나도 해냈는걸요? 당신도 충분히 살을 뺄 수 있고, 저처럼 건강해질 수 있어요. 당신은 사고 이후 급격하게 살이 찐 것으로 알 고 있어요. 전처럼 날씬한 몸으로 밖을 다닐 수 있어요. 당신의 세계는 이 작은 집만이 아닌걸요. 나를 믿어요.”

 한 때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무거웠다는 K 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설득의 밑바닥에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체중감량에 성공해 보았다는 자신감이 깔려있었다. 그가 비취 같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설득할 때면, 단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던 나의 옛 모습이 가끔씩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그에게 설득당해 체중감량을 시도했을 때마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가르쳐주듯이, 실패했다. 그의 엄격한 식단과 관리 하에서는 놀랍게도 먹는 양이 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는 내가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내었고, 습관적으로 이어진 먹는다는 행동이 제어되자 뜻밖에도 식욕은 잔잔히 잦아들었다. 나는 그간 내 몸이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양을 훨씬 뛰어넘으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전처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영혼이 허전해졌다. 그 불안감은 내가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관성적인 먹기 행동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해소되곤 했다. 나는 그 불안감이 무서웠다.

 형체를 알기 힘든 그 불안은 때때로 놀랍게도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를 잡아먹곤 했다. 전보다 적게 먹는 날이 조금이라도 이어질라 치면 나는 여지없이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악몽은 대개 칼에서부터 시작했다. 꿈이라는 암흑의 장에서도 눈이 멀 것 같은 빛을 발하는 칼 두 자루는 저 멀리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한다. 고기를 베어내고, 채소를 썰고, 마늘을 다진다. 그 칼은 서서히 서서히 내게 다가와, 내 피부를 가르고, 살점을 베어낸다. 대개의 공포처럼 분노서린 무분별한 난도질이라기보다, 정제된 놀림으로 내 살들을 조심스레 도려내는 세련된 칼의 움직임이다. 피가 흘러내리지도, 살이 베어나가는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저 칼은 조심스레 나를 두텁게 뒤덮고 있는 살을 도려내며 나를 점점 작게 만들어갔고, 나는 나를 다루는 칼의 춤 앞에서 점점 작아져갔다.

 놀랍게도 그 지점에서 나는 무한한 공포에 휘청이고 만다. 내가 점점 작아진다는 것, 그리고 아름다워진다는 것. 칼이 내 주변을 서성이며 노닐수록 나는 작아지고, 그만큼 아름다워져 갔다. 그것은 사고 이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기 이전의 매력적이 나의 모습이다. 칼이 내 눈앞에서 동선을 새기며 살점을 발라내면, 살들에 파묻혔던 나의 이목구비와 턱 선이 도드라지게 되살아났다. 목 아래 언저리에서 현란하게 춤을 추면, 가슴이 봉긋해지고 허리가 매끈해졌다. 배꼽부터 발끝까지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나면 곧게 뻗은 다리와 탄력적인 엉덩이가 빛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작아진 나의 모습을 보며 아름다움 이라든지, 매력 따위의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공포가 나를 엄습한다. 나는 분명 그런 가치를 모르는 여자여야만 했다. 여성, 남성, 아름다움, 매력, 사랑, 외로움. 이런 가치들을 모르는 여자라는 전제하에 나는 단지 먹기라는 행동에만 중독되어 살아왔던 자기 파괴적 삶의 합리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뚱뚱한들 괴롭지 않았다. 나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뚱뚱한들 고통 받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몰랐기에 뚱뚱한들 눈물짓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몰랐기에 나는 나를 지속적으로 파괴하며 살 수 있었다.

 철저한 부정은 내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파괴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 꿈의 칼날은 의식으로 덮어두었던 진실을 끄집어내었다. 나도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던 여자라는 것, 사랑을 갈구했던 여자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깊은 곳 어딘 가엔 그 가치들이 어두운 장막 아래 뒤덮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애써 숨겨두었던 가치, 개념, 감정들이 내 의식을 지배하게 되면 그로인한 헛된 희망이 내 삶을 자괴감으로 아스라들게 할 것임을. 나는 지금처럼 뚱뚱한 돼지로 살아야만 했다. 나는 예민한 감정을 도려낸 채 기계적으로 먹기만 하는 존재일 때, 스스로 삶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자,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미모에 대한 동경, 사랑이 주는 충만감. 저런 것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들이야. 나는 그저 먹으며 살아가면 되는 존재라고.

 칼의 현란한 춤이 나를 소름돋게 만드는 악몽이 지나가면 여지없이 폭식이 이어졌다. 꿈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왔던 나를 불안케 하는 감정들은 위속으로 쏟아지는 음식아래 덮혀져갔다. 팽창하다 못해 찢어질듯 한 위의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긴 들숨으로 가라앉을 수 있었다. 살을 잃으면, 죽을 것이다.

 하지만 K는 쉽사리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꾸준히 내게 다이어트를 시작할 것을 종용하였으며, 잘 짜여진 식단을 들고 와 나를 설득하였다. 내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안돼요. 이렇게 먹다간 당신은 곧 죽고 말거에요. 정말이에요. 곧 죽는단 말이에요.”

 나로서는 더 살이 쪄서 죽는 것과, 살이 빠져서 죽는 것이 다름없었다. 그래,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렇게 살다 언젠가 죽는 것이겠지. 내가 죽게 된다면 이 쓸쓸한 집에서 싸늘히 죽어있을 나를 발견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야. 노크를 해도 응답이 없으면 수리공을 불러 열쇠를 따고, 영혼이 빠져나가 큰 고깃덩이라일 뿐인 나를 발견하겠지. 내게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K 는 언젠가 찾아올 나의 죽음을 확인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정작 K 자신은 내게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K는 대개의 사회복지사들이 그렇듯 표정을 감추는데 능숙했다. 언제나 궂은 일,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웃음으로 대했다. 하지만 오늘은 K 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찌된 일이죠? 갑자기 몸이 너무 불은 것 같은데요.”

 집에는 거울이 없었던지라 내 외견을 내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체중이 불었다는 사실을 무릎으로 느낄 수 있었던 만큼, 외적으로도 도드라지게 살이 올랐나보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도대체 뭘 얼마나 먹은 거예요? 또 과자나 음료수 따위를 들이 부은 것은 아니겠지요?”

 K는 다소 성이 나거나, 실망한 몸짓으로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지만, 그가 온 뒤로 쓰레기통을 가득 매우던 과자봉지와 빈 음료수 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해요. 전 더 이상 간식을 먹지 않기로 했어요.”
 “반가운 이야기인데, 납득이 가질 않아요. 도대체 뭘 먹은 거에요? 살이 너무 많이 찐 것 같아요.”
 “...”

 그때였다. 그가 언제나처럼 음식 재료를 양손에 들고 낑낑대며 내 집으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 오늘은 요리는 애저...아 이런, 손님이 계셨군요.”
 “누구시죠?”

 K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K 역시 나에게는 손님임을 감안하면 굉장한 무례였다. K는 자신 말고는 나를 찾을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라도 있는 듯이 그를 경계하였다.

 “아, 저는 이 친구를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건강을 돌봐주고 있어요. 죄송하지만 당신은 누구신지요?”
 “건강을 돌본다고요? 의사이신가요?”
 “아니에요. 저는 요리사입니다. 우연하게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대로 된 음식을 전혀 먹지 않더군요. 저는 그래서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해서 다시 건강을 되찾아 주려고 해요.”

 그의 말을 듣자 K 의 눈빛이 다소 누그러졌다. 분명 집에는 전처럼 수북이 쌓여있던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 봉지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걱정하던 나의 건강이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나보다.

 허나 여전히 그는 날 서 있었다. 나를 담당하는 복지사로서의 하찮은 직업적 소임감 때문이었을까. 

 “당신이 음식을 만들어 준다구요? 요리사라시니 맛있는 음식은 만들겠지만, 적당한 양을 주는 것은 확실한가요? 일주일만의 방문인데 눈에 띠게 살이 불어났어요. 혹시 폭식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음식을 해주는 건가요? 내가 알기로 이 사람은 전담 요리사를 고용할만한 돈은 없을 텐데.”

 K의 의심이 짙어질수록 그의 말도 도를 넘기 시작했다. 나의 경제적 사정을 운운하다니. 도대체 자기가 나에게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는 마치 나의 보호자처럼 굴고 있었다. 슬슬 화가 북받쳐 올라 혀를 통해 튕겨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아아, 오해마세요. 저는 언제나 정량을 주고 있어요. 식습관이 갑자기 바뀌면서 일시적으로 체중이 불어난 것입니다. 언젠가는 분명 건강해질 거예요. 적당한 양의 음식을 정량으로 먹는 것만큼 건강에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아, 그리고 저는 잠시 요리사 일을 쉬고 있습니다. 쉬는 기간 동안 요리에 대한 감도 잃지 않고, 이 친구를 돕기도 할 겸 겸사겸사 해서 돕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순간 그가 침착한 어조로 나와 K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사람치고는 놀랍게도 차분한 태도였다. 그의 설득력 있는 말에 K도 의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K는 건강해진다는 말과 체중을 감량케 할 것이란 말을 동의어로 여겼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K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무례를 깨닫고 당황스런 눈빛을 보였다.

 “아, 그건 그렇고 그쪽 분은 누구신가요?”
 “초면에 무례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사회복지사고, 저 분은 제 담당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씩 정기적으로 집에 들려 저 분을 돕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제가 잠시 실수한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네. 이분의 건강은 제가 잘 돌볼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게다가 집도 깨끗하고, 필요한 것도 다 있답니다. 오늘은 별로 할 일이 없으실 것 같은데요.”

 K가 당황한 틈을 보이자 순식간에 그가 파고들었다. 역시나 초면의 상대방에겐 무례한 말이었지만 K와는 달리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기세가 꺾인 K는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진 않은지 확인이라도 하듯 집 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K, 이 남자 말이 맞아요. 오늘은 그냥 가 주세요.”
 “알았어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K는 순순히 물러났다. 소란할 뻔했던 아침은 그렇게 잦아드는가 싶었지만, 그는 뒤늦게 참아왔던 분노를 흘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재수 없는 녀석이군. 귀찮은 놈이야.”
 “당신이 참아요. 그는 그저 직업에 충실하려 했을 뿐일 거예요.”
 “그래, 그 직업도 재수 없어. 당신은 저 꼴보기 싫은 녀석의 존재를 왜 말하지 않았던 거지? 당신은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아. 내가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당신을 돌보고 있으니. 저 재수 없는 녀석이 일주일 마다 이 집을 찾아올 것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나는군.”
 “말이 심해요.”
 “개자식, 더러운 냄새를 풍기더군. 맛대가리 없는 녀석. 언젠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가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문득 나는 그가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뒤늦게 터진 그의 분노보다, 그 분노를 뒤에 숨기고 무섭도록 냉정하게 K 를 대하던 그의 모습이 더 두려웠다. 문득 이 사람은 지금 내 앞에서도 무언가를 차갑게 봉인해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가라앉자 그는 어느새 최고의 요리사로 되돌아 와 있었다. 주방은 역시나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향긋한 고기 냄새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잠시 감정의 언저리에서 나를 위협하던 두려움은 간데없이, 오늘은 어떤 고기가 나의 미각을 자극시켜 줄 지 기대감이 들어섰다.

 기가 막힌 향이었다. 그가 접시에 고기를 담아 나에게 접근해 올수록 나는 찌릿찌릿한 후각적 자극과, 강렬한 미각적 자극에 대한 기대로 온 몸이 달아올랐다.

 언제나 고기를 맛보는 부분에 있어서 나는 말이 막힌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의 음식이 아닌,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내 입안에서 육즙이 터져 나올 때엔 성적 쾌락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나 할 까. 고기의 맛은 단지 입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맛이란 혀를 타고 온 몸의 솜털 구멍 하나하나 까지 퍼져나게 미세한 떨림을 자아내었다.

 “정말 너무나 맛있군요. 대체 이 고기는 어떤 고기이기에 이런 맛을 내는 것이지요?”
 “일본산 와규. 최고의 소고기. 우리나라에선 수입이 되질 않지만, 나는 고기에 있어서는 법보다도 위랄까.”
 “대단해요. 이 맛이란. 어떻게 이런 고기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와규는 일본의 대표적인 검은소 고기야. 불포화 지방이 다른 어느 고기보다 많고, 마블링 역시 훌륭하지. 와규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고기야. 자랄 때는 최고의 축산업자들이 마블링과 고기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일일이 마사지를 하지. 고기가 되어서는 나와 같은 최고의 요리사가 섬세하게 조리를 해야 하고. 사료 또한 맥을 주원료로 한 것만 먹여야 해. 그런 과정을 거쳐, 바로 당신의 입 속에 있는 와규가 탄생하는 거지.”
 “당신은 정말 모르는 고기가 없군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난 타고난 요리사야. 삼 대 째 고기를 다루었지.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나를 최고의 요리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나를 길러주셨어. 어린 시절엔 최고급 육질을 생산하는 목장에 나를 보내셔서 어떻게 해야 최고의 살점을 만들어내는지 직접 보게 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 그 고기를 어떻게 해야 최고의 음식으로 요리해내는지 가르쳐주셨지. 오랜 시간 목장에서 살아있는 소, 돼지들과 함께한 결과, 나는 그들의 냄새만 맡아도 얼마나 그들이 건강한지, 최고의 육질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 글쎄, 적어도 단 한 가지는 확신해. 이 나라에서 나보다 고기를 잘 알고, 잘 다루는 자는 없다는 것을.”
 “대단한 사람이군요.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그런 사람이 내오는 요리를 매일 먹는 나는 정말 행복한 여자이구요.”
 “하하. 과찬이야. 두고 볼 일이지. 자, 남은 고기를 다 조리해 줄게. 오늘은 이 와규를 다 먹어야 한다고.”

 그 까탈스런 고기는 연한 불에서 오랫동안 익혀야 했기에 그는 불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는 그 귀하고 비싸다는 고기를 나를 위해 온 종일 요리해줬다. 그가 내오는 고기는 언제나 훌륭한 맛이었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 날처럼, 그는 언제나 훌륭한 고기를 내게 대접해주었고, 나는 그 고기를 먹으며 살아갔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전처럼 먹는다는 행동에 중독되어 그 어떤 미에 대한 감각 없이 기계적으로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던 의미 없는 몸뚱이에서, 맛을 즐길 줄 알고, 그 맛에서 삶의 행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미식가가 되어버렸다.

 그의 음식을 먹는 나도,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는 그도 만족스러운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고기를 조리해주던 그도 분노를 주체 못하고 광폭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으니, 바로 K 가 정기적인 방문을 마치고 집을 나선 후였다. 말없이 돌아섰던 첫 대면과 달리, 그 후 K 는 적극적으로 우리 사이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요. 당신의 몸을 봐요. 내가 처음 봤을 때 보다 수 십 킬로는 더 찐 것 같다구요. 정말로 저 사람이 당신의 모든 음식과 식단을 책임지고 있나요?”
 “K씨,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저 사람은 아주 건강하답니다. 저는 요리사에요, 항상 최고의 재료로 저분에게 음식을 해드리고 있어요.”
 “당신,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 사람이 건강하다는 거야? 누가 봐도 체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저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당신이 저 사람을 망치고 있어, 죽음으로 이르게 하고 있다고!”

 다소 다혈질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던 K 와는 달리 그는 언제나 K 앞에서 침착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뚫고 팽창할 법한 팽팽한 분노의 끈을 보았으나, 그는 언제나 간신히 그 끈을 참아내었다.

 "저를 믿으세요. 다음 주에는 분명 체중이 줄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이 집을 떠나겠어요.“

 그는 간신히 K를 달래 되돌리곤 하였다. 너는 요리사의 자격이 없다. 너는 저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이끌고 있어. 너는 형편없는 요리사이기에 직업이 없는 거야. K의 악담과 그에 대한 노골적인 모멸에 대한 분노는 언제나 K 가 등을 돌리자마자 폭발하였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그는 K 가 떠나고 나면 도마 위에 아직 조리되지 않은 고기를 올려놓고 거대한 칼을 내리치며 분노를 발산하였다. 양손에 칼을 쥐고 번갈아 고기를 내리치는 광기어린 그의 모습과, 그의 주변을 붉게 물들며 부챗살처럼 튀어 오르는 살점은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나는 천재의 이면에 숨겨진 광인의 모습을 보며 그저 얼어붙을 뿐이었다.

 진에 빠져 칼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입버릇처럼 되뇌일 뿐이었다. 한 달만. 한 달만. 한 달만 한 달만. 그 다음 K의 방문이 있던 날은 이렇게 되뇌일 뿐이었다. 삼 주만, 삼 주만, 삼 주만. 그리고, 보름만, 보름만, 보름만.

 -보름 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정말로 그를 죽일 셈인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건 나와 그의 문제이지. 그보다도 훨씬 행복한 일이 우리 사이에 있을 것이거든.
 -무엇인데요?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그 날, 내가 훌륭한 요리사이고, 당신은 맛있게 내 음식을 먹어주었다는 결과. 당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건강해지고, 훌륭한 살결을 지닐 그 날.
 -내가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는 날이군요.
 -정확해.
 -어떻게 알고 있지요? 당신은 나의 무게 한번 재 본적이 없잖아요.
 -나는 알 수 있어. 당신의 숨소리만 맡아도, 당신이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당신의 살결을 한 번만 쓸어 봐도.
 -그 날이 오면 나를 떠날 것인가요?
 -아니. 그날에야 말로 당신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야. 서로의 몸속에서, 피 속에서, 뼛속에서.

 하지만 K 는 며칠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사나흘이 지날 때 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를 포기했는가 생각이 들자 다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내심 나는 별 일이 없을 거라 믿으면서도 K와 그 사이의 팽팽한 구도에 두려움이 생기곤 했다. 누군가가 이성을 잃는다면, 손 쉬이 끊어져 버릴 두 사람 사이의 끈이었다.

 그 날은 그가 12개월의 비육 사료로 훌륭한 마블링과 1등급 지방색과 육색을 갖추었다는 북미산 스테이크를 조리하던 날이었다. 그는 등급판정사로 일하던 기억을 되뇌며 고기에 대해 신명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등급 판정사는 다섯 가지 항목에서 1에서부터 9등급까지 등급을 먹이는 일을 해. 일정한 기준치가 개시된 표가 있는데, 그 표를 들고 다니면서 하는 것이지. 나같이 숙련된 사람은 굳이 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지만. 바둑과는 달라서 1등급에 근접할수록 좋다는 뜻이야. 탄력성이나 골경화정도보다는, 마블링과 지방색, 그리고 육색이 중요하지. 이 고기는..”

 그 때였다. 평소에 찾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밤에, K가 나의 집을 찾았다.

 “당신, 이 뻔뻔한 자식. 아직도 고기를 먹이고 있군.”
 “아,K씨. 오해입니다. 단지 세끼 식사 중 한 번일 뿐이에요. 오늘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저녁을 드릴 뿐입니다.”
 “닥쳐. 이 미친 새끼야. 세 끼라고? 그녀가 하루에 세 끼만 먹어서 저렇게 살이 쪘다고? 웃기는 소리. 당신은 하루에 다섯 끼고, 열 끼고 줄 인간이지. 그녀를 살찌우기 위해.”
 “무슨 소리인가요. 저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건강을..”
 말이 끝나기 전에 K 는 그의 뺨을 휘갈겼다. 졸지에 뺨을 맞은 그도, 그를 바라보던 나도 얼음장 같이 굳어버렸다.

 K는 내게 다가와 두 손을 맞잡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잘 들어요. 당장 저 사람을 이 집 밖으로 나가게 해요. 그리고 다시는 이 집에 들이지 말아요. 저 사람은 당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할 것이에요. 저 사람이 이 집에 온 이후 당신이 얼마나 살이 쪘는지 알고 있지요? 당신의 건강? 웃기는 소리에요. 저 사람은 미친 사람이에요. 난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요. 제발 내 말을 들어요.”

 어안이 벙벙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압축적으로 일어난 지라, 나는 사고의 과부하가 걸러버렸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지만,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K의 눈빛에는 분명 진실이 어려 있었다.

 “K씨, 말이 심하십니다. 무슨 소리이신가요. 저에 대해 뭘 안다는 것이지요? 저는 단지 이 분에게 좋은 음식을..”
 “닥쳐 ! 이 미친새끼야!”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K는 그의 목을 잡고 벽으로 밀치더니, 넘어진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단 몇 대가 오갔을 뿐인데 이미 그의 얼굴은 피로 곤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불어 K의 얼굴도 그의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만해요!!”

 나는 황급히 K를 말리려 일어서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전에 비해 너무나 무거워진 몸을 내 무릎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낑낑댔지만, 계속 뒤로 자빠질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내 힘으로 일어선 적이 언제였던가. 그의 부축 없이 일어선 기억이 빛바랜 과거처럼 가물거렸다.

 나는 주변의 것들을 잡히는 대로 K 에게 던져댔다. 휴지 갑, 포크, 잡지책, 동전 지갑. 무엇하나 그에게 닿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던진 접시가 그의 이마에 적중했다.

 어느새 K의 이마에도 붉은 선혈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피 인지, 자신의 아래에 깔린 남자의 피 인지 모를 일이었다. 정신이 든 듯한 K는 자기 자신도 놀란 모양이었다. K는 흐르는 핏줄기 사이로, 멍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제발 그만해요, 그 사람을 죽이겠어요!”
 “하지만 당신, 내 말을 꼭 들어야 해요. 이 자는 미친놈이에요. 반드시 이 자를 내보내야 해요.”
 “아니에요. 그는 나와 함께 할 것이에요.”
 “내 말을 들어봐요. 이 녀석이 오고 나서 당신은 수 십 킬로나 더 쪘어요. 당신의 삶을 좀먹는 녀석이에요. 당신은 점점 죽어가고 있다구요. 정신 차려요!”
 “상관없어요. 살 따위는, 더 뚱뚱해지는건 전혀 상관없으니 더 이상 우리 사이에 간섭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요? 왜 그와 함께 하면서 죽음으로 치달으려는 것인가요? 왜 그와 함께 하는 것인가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던 그 찰나에 스스로 놀랐다. 나는 왜 그가 내게 무료로 좋은 음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공짜로 음식을 갖다 바치는 그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하지 않았을까. 세상 그 누가 그의 아름다운 음식을 거절하겠느냐 되묻지 않았을까. 수많은 답 대신, 내 입가에 아른 거렸던 것은 사랑이라는, 유독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유치한 단어였다.

 스스로 놀랄 뿐이었다. 나는 그런 감정 따윈 지우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나는 그저 전처럼 먹고 싸는 행동에 충실한 살덩어리일 뿐인데. 내게는 가당치도 않은 단어가 어째서 그 순간 혀 위에서 퉁겨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정말 그는, 나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음식을 통해 끌어내는 사람이란 말인가.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K가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K는 나의 머뭇거림에서 자신감이라도 얻었는지 더욱 거세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래요, 아무런 이유도 없어요. 이 자식은 미친 녀석이에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녀석이 당신에게 접근했을까요? 당신이 자신의 음식을 먹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라고 말했지만, 말이나 되는 이유인가요? 당신이 그가 주는 음식 앞에서 냉정함을 잃고 있을 때, 나는 그를 조사했지요. 그가 누군지 알아요? 그는 요리사 자격증마저 박탈당한 미친 녀석이에요. 녀석은 수 년 전에 자기 아버지를 죽였어요. 용케 정신병 진단을 받아 형이 길지 않았지만, 미친놈 이라구요. 이 자식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를 먹은..”

 K는 거기까지였다. K의 입에서 뱉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부터는 목 아래 성대 부근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내는 소리만이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K의 뒤에서 목을 잡고 그 목에 칼을 그은 그가 K를 밀쳐내며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사람도 별다를 바 없어. 목에 박힌 경동맥을 잘라내는 것만큼 깨끗한 죽음이란 없지. 되레 피부가 연하기에 소, 돼지보다 더 쉬운 법이야. 이렇게 살짝 긋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를 쏟아낼 것이라고.”

 K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늘어져있었다. 그 와중에도 목의 벌어진 틈사이로 피는 새차게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몸의 움직임도, 사고의 움직임도 굳어버렸다. 무게가 불어버린 나는 이미 내 의지에 따른 몸의 움직임은 상실해 버린 지 오래였다. 어쩌면 몸이 굳어버린 상황에서, 머리마저 굳어버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음은 다행일런지도 몰랐다.

 그는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쓸어내리더니 들고 있던 칼을 버리고 주방에서 큰 칼과 도마를 가져왔다. K가 뿜어내는 시큼한 핏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머리를 쪼개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을 텐데, 사람은 두피가 얇아 머릿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뭐, 들고 있는 칼이 작아서 말이야. 딱 동맥을 자르기에 적당한 크기였거든. 내가 말을 했지, 이 녀석은 냄새가 좋지 않다고. 피 냄새도 끔찍 하구만. 술, 담배를 좋아하는 녀석이었을 거야. 관리 없이 방탕하게 자라난 동물은 고기 맛이 좋지 못하단 말이지.”

 그는 큰 칼로 그의 가슴을 찍어내려 가슴뼈를 쪼개더니, 작고 예리한 칼을 들고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갈비란 참, 뭐랄까, 사람의 방패라고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기관인 심장을 보호하는 방패 같은 녀석이지. 그리고 이 방패 사이에 촘촘히 붙은 이 살점이 그 어느 부위보다 부드럽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아? 그래.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사람의 갈비 맛을. 자, 기다려봐. 물론 이 녀석은 형편없는 육질을 갖고 있지만, 인육이란 것을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그는 한참을 걸러 조심스레 K의 몸에서 살들을 발라내고선, 그 살들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곧이어 그는 소금과 후추로 간단히 간을 재고 나서, K의 몸에서 발라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의 뒷모습을 희미하게 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요리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춤사위까지 곁들여가며 흥겹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누워있는 소파에서부터 주방까지는 거리가 꽤 있는지라 충분히 문을 박차고 밖으로 도망 나갈 법 했지만, 그는 내가 도망갈 위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아마 그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작은 콘크리트 창살에 갇혀 사육당하는 돼지처럼, 내가 움직임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끔찍한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그가 나에게 바친 고기들은 내 몸에 알알이 박혀 무거움을 더하다 못해, 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로서는 완벽한 사육이었다. 당하는 존재조차 사육인지 알 수 없었던. 

 “아, 미안한데 이 고기만큼은 내가 먼저 맛보고 싶어. 그간 항상 당신만 먹어왔으니 한 번 정도는 양보할 수 있겠지? 도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 사람을 먹는다는게. 다른 고기는 질릴 만큼 질렸다고.”

 그는 적당히 익은 K의 갈빗살을 접시에 담아와 내 앞에서 먹기 시작했다. 다른 고기와 다를 바 없는 그것은 K의 일부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또 그것을 먹는 그도 사람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으음, 나쁘지 않아. 특유의 맛이 있다고. 전에 먹었던 나의 늙은 아버지와는 또 다른 신선하고 젊은 맛이 있어. 인육 특유의 탁한 육즙이 혀에 채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훌륭한 고깃감이지. 하지만, 뭐 많이 먹을 생각은 없어. 나머지는 당신이 먹어야 하니까.”
 “죽어도 먹지 않겠어요. 절대로요.”
 “무슨 소리야. 난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내가 당신을 죽일 것 같아? 죽는 사람은 K로 족해. 약속할게, 당신을 절대 죽이지 않아. 내가 그렇게 공들여 당신을 위해 고기를 요리하던 것을 기억해봐. 내가 무슨 이유로 당신을 죽이겠어? 내겐 사람을 죽이는 것 따위는 문제되지 않아. 다시 정신병 판정을 받고 병원에 수감되겠지. 멍청한 녀석들.”

 그는 칼끝으로 K의 일부분을 찍어, 그것을 내 입에 대었다. 그리고는 피 뭍은 손으로 우악스럽게 내 입을 벌린 뒤 고기를 쑤셔 넣었다. 나는 머리로는 죽어도 입을 대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지만, 몸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의 뜻을 따르고 있었다. 예리한 칼날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내 입에 고기가 들어가는 것을 본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쁜 일은 잡아먹힌 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 다는 것이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을 먹는 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멍청한 녀석들은 내가 사람을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해. K를 죽였다는 것이 발각되어도 나는 고작 병원에 갈 뿐이야. 게다가 병원에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 특기를 살려 요리를 하였지. 나는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 대가는 훌륭한 시설에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몇 년 동안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었어. 행여 다시 병원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편하게 몇 년 지내고 나면 다시 사람을 먹을 기회를 주겠지. 자, 이 고기를 먹어. 아니 먹어야 해. 먹고 나서 오늘을 축복하자구. 이 고기를 먹고 나면, 오늘 밤 당신은 이 땅에서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고 말 거야. 당신을 죽이지 않아. 가장 뚱뚱한 여자는, 그야말로 내게 찬란한 영광인걸. 으음. 당신은 아직 고기를 씹지 않았군. 어서 씹기 시작하길 바래.”

 선택권이 없다는 상황은 이성이 개입할 여지를 지운다. 방금 사람을 죽이고 내 앞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이 남자난 내가 K를 먹기를 강요하고 있었고, 나는 그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포에 질려 기능을 상실한 오감은 K가 어떤 냄새와 맛을 풍기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 잘 먹고 있어. 자, 기다려, 이젠 허벅지를 먹을 차례야.”

 그는 오랜 시간동안 능숙한 솜씨로 K를 요리해왔고, 나는 그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눈 앞 에서 작아져가는 K를 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더욱더 끔찍한 것은 내가 그가 작아지는 만큼 내가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멍에의 꼭지점을 찍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는 그 외의 모든 감각과 감정을 지워내 버렸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K를 먹어가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어떤 맛도 느끼지 않았고, 느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먹기라는 행동에 중독되어, 기계적으로 그것을 반복하던 그 예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은 의외로 먹을 부분이 많지 않아. 물론 손가락 발가락까지 다 먹을 순 있지만 맛이 형편없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지. 자, K는 끝났어. 그리고 축하해, 당신은 이제 가장 뚱뚱한 여자야.”

 그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K를 먹는다는 행위가 끝나자 공포는 갑절이 되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당신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먹었고,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었어요. 자, 모두 당신의 뜻에 따랐어요. 제발, 아까 약속한대로 나를 죽이지 말아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어차피 나는 당신의 도움 없이는 이 집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텐데요? 아니, 이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거예요. K가 이 집에 왔을 때는 근무시간도 아니었어요. K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제발, 약속을 지켜주세요.”
 “아니야, 아니야. 지금 약속이 중요한게 아니야. 지금은 서로를 축하해주어야 한다고. 알아? 당신은 지금부로 가장 뚱뚱한 여자가 되었어. 행복하지 않아? 우리가 이를 위해 얼마나 서로 노력했는지 기억해보라고! 어서 말해, 행복하다고. 그리고 자신을 가장 뚱뚱한 여자로 만들어준 내게 고맙다고. 어서!”
 “행..행복해요. 그리고 너무나 고마워요. 다 당신 덕이에요.”
 “그래! 자, 여기 K의 마지막 고기, 사람의 고기 중 가장 맛있다는 화살근이야. 가장 부드럽고, 육즙도 충만하지. 자, 이것을 나누어먹자. 당신을 가장 뚱뚱한 여자로 만드는데 방점을 찍어준 K를 기리고, 서로를 축하하기 위해!”

 그는 마지막 남은 K의 살점을 반으로 잘라, 그 중 한 덩이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남은 한 덩이의 살점을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나의 영혼은 공포감에 시달리다 못해 서서히 그 끈을 놓아가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K의 마지막을 먹고있다. 그래, 그는 약속을 지킬 것이야. 다시 깨어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거야. 살점이 발라진 K도, K의 살점을 발라낸 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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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기절해버렸군. 그나저나 참 비리군. 저 병신 같은 녀석은 맛이 없어. 그래. 방탕하게 살아서 그래.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어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했겠지. 좋은 고기는 좋은 사료에서 비롯되지. 싸구려 음식이나 먹으면서 살았을 녀석이 맛있을 리가 없지. 녀석이 고기를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야.”

 요리사는 인상을 찌뿌리며 고기를 삼켰다. 입 안의 고기가 깨나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별 탈 없겠지. 아직 소화도 덜 됐을 테니 말이야. 그래, 간식은 여기까지야.”

  
 간식은 거기 까지였다.
 하지만 인육을 좋아하는 요리사는 아쉽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최고의 고기가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