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의 방향을 등지고 서있다. 내 앞에는 그녀가 오들오들 떨고 있다. 추운 늦겨울이다. 자정의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그녀에게 향하는 차디찬 바람을 막아주었다. “귀엽네.”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이미 두 대의 버스를 보낸 상황이었고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막차가 도착하기까지 7분 남았다는 안내가 나왔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 전광판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 이제 7분이 남았다.

  우연한 만남이었고 어찌 생각하면 가벼울 수 있던 관계에서 우리는 점점 서로의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침밥을 챙겨 먹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녀는 내가 술을 줄였으면 한다고 걱정했다. 그녀가 일하는 직장의 점심시간은 나의 점심시간이었고 그녀의 퇴근 시간이 나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서울 외곽에 사는 그녀는 버스의 배차 시간이 꽤 길었고 우리는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같이 추위를 견디어냈다. 항상 먼저 가라고, 나 기다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항상 끝까지 옆에 있었다. 그녀는 버스의 인도 쪽 좌석에 앉는 것이 흔했고 우리는 유리창을 사이로 두고 서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웃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아쉬움이 진했고, 우리 사이의 창문을 미워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 때 나의 표정이 궁금했다. 나는 행복한 꿈을 꾸다 일어난 사람처럼, 꿈이란 매우 순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웃진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순간을 살았다. 순간 순간 서로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감사하며 만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더 그랬다. 우리는 정말 순간을 믿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나에겐 행복하다 못해 황홀했다. 사람이 누군가의 심중을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지만 나는 그녀 또한 그랬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해의 겨울을 차곡차곡 모아 담았다. 넣기는 쉬웠다. 하지만 빼낼 수는 없는, 그런 주둥아리가 작은 단지에 우리의 순간들을 담았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잠깐의 꿈을 꾸었다. 길지 않은 꿈. 더는 우리가 ‘우리’일 수 없다고 운명은 그녀와 나에게 말을 했다. 체크아웃 타임이다. 짐을 챙긴다. 나가기 전, 그녀와 나는 ‘우리’의 단지를 두고 나간다. 잠시 묵었던, 새하얀 침대에서 가슴 아프지만 행복한 꿈을 같이 꾸었던 방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불이 꺼진다. 그녀와 나는 로비에서, 약간의 시간, 정확히는 7분을 말없이 서성인다. 그녀가 먼저 나간다. 그 때의 내 표정이 궁금하다. 웃진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녀도 손을 흔들지는 않았다. 어딘가 익숙한 유리문 하나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2:3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