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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청년들의 '지적 영웅', 조던 피터슨 토론토 대학교 교수가 참여한 토론을 책으로 옮긴 물건이다. 나는 조던 피터슨 교수의 많은 주장들에 극도로 공감하는 사람이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참 많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목차는 위와 같다. 아주 형편없다. 토론이란 자고로 상대방과의 설전을 말하는 것인데, 책의 반 이상이 단순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물론 참여자 네 명의 의견을 정리된 형태로 읽을 수 있기는 했지만, 나는 좀 더 민감하고 깊은 문제들에 대한 의견들을 듣고 싶었다. 또한 토론 부분도 문제가 많다. 토론의 주제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을 외치는 것은 올바른가?" 정도가 되었으면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주제가 "PC는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라니. 당연하게도, 여기서 쓰인 진보라는 워딩은 정치적인 속뜻을 내포하는 그 진보다. 어쩌면 이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 반대 진영의 스티븐 프라이는 그가 말하길 '물렁한 좌파'이기 때문이다. 정치색이 좌파인 인물이 PC를 배격하자는 주장을 한다면, 뭐 그것 나름대로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독자로서 이 책에서 PC 그 자체를 제대로 정의한 뒤,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가, 또는 사회에 이득이 되는가 등을 따지고 들어가는 토론을 읽기를 원했다. 이 책은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선호하는 PC가 그들의 사상과 합치하는지 여부만 따지고 있다. 내 생각엔 이 도서는 제목을 잘못 지어도 한참 잘못 지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토론 자체는 건실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네 사람은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한다. 스티븐 프라이는 PC의 언어에 대한 규제적인 면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PC란 대학을 점령한 극좌의 무기이며, 이는 신마르크스주의로 이어지는 아주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주장을 한다. 마이클 에릭 다이슨과 미셸 골드버그는 각각 흑인과 여성의 억압의 역사 속에서 현재 PC 운동 자체가 아주 의미있는 일이며, 기득권이었던 백인 남성들의 권리에 흑인과 여성의 권리를 맞추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한다. PC라는 '공통 관심사' 정도만 일치하지, 실제로 주장하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았으니, 토론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형편없는 토론을 형편없이 묶어 낸 책에서 그나마 조금 얻은 것이 있어 공유해보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티븐 프라이의 주장과 그 반대 의견이 위주가 되는 토론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의 말들 중 인상깊은 것들이 꽤 있었다. 인용해보자.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이렇습니다. "쉿, 우리 생각을 말할 수 없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가는 성적이며 낭만적인 감정의 진정한 깊이와 미묘한 차이는 알 수 없는 거야"라는 것입니다. … 하지만 아마도, "아니, 그건 다르지요. 역사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다른 경험을 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 특정 분야에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p.135-136


스티븐 프라이는 역사적 억압, 사회운동과 현대의 PC 운동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사실 나도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어떤 언어의 "속뜻"이란 문학 작품이 아니고서야 일상 언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Fireman이라는 단어에 man이 들어가 있다 해서 소방관은 반드시 남자라는 사상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설령 아주 미묘하게 존재한다 해도, 그 단어를 Firefighter로 바꾸는 데 필요한 사회적 합의 절차와 비용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언어의 역사성을 인정하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과거가 만든 단어를 반드시 수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뜻은 이미 희석되고 현대인들의 사상에서 지워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의 자유라는 고상한 주제를 끌고 올 필요도 없다. 그리고 스티븐 프라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PC는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어요. 우파 신병들을 모집하는 하사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p.14


          정말 그렇다. PC 운동의 그 교조적이고 깨끗한 척하는 태도는 오히려 좌파였던 사람마저 우파로 등 돌리게 만든다. 쓸모 없고, 소모적이며, 과격한 사회운동에 신물이 난 많은 청년들이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지향을 우파로 바꾸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한국에서도 20대 남성의 경우에는 진보주의자보다 보수주의자들이 훨씬 많은 것으로 통계가 뒤집힌 지 오래다. 이처럼, PC 운동은 그 주도자들에게 득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스티븐 프라이의 주장이며, 나 역시 여기에 아주 강력히 동의한다. 의미도 없고, 득도 되지 않는다면, PC 운동이란 하등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음은, 내가 원하던 종류의 의견은 아니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의 흥미로운 의견이 있어 인용해보고 싶다.


집단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개념적 게임을 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건 부족주의를 악화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p.112-113


          조던 피터슨 교수는 현재 PC 운동을 포함한 극좌의 정체성 정치 운동이 '부족주의'를 심화시킨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이라는 그룹, 흑인이라는 그룹, 성소수자라는 그룹, 백인이라는 그룹, 남성이라는 그룹 등 좌파적인 시각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떤 그룹의 일원이다. 사실 이렇게 그룹을 만들어서 그들을 위한 정책을 내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극단으로 치닫을 때, 그룹간의 분쟁이 야기되면 거기서부터는 퍽 심각하다. 이 책에선 미국과 캐나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PC 운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지만, 이건 비단 북미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이런 표현을 한 바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국민은 반으로 나뉘어 분열되고 5년 내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과거로 되돌아가는 그런 나라가 될 것."
- http://hani.co.kr/arti/politics/assembly/793077.html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의 이 말이 바로 조던 피터슨 교수가 지적하는 바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격렬한 PC 운동을 수용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나와 비슷한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PC 문화를 배격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해야만 부족주의의 재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08:4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