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게시판보다는 여기가 맞을 것 같아 문화교양 게시판에 씁니다.

공연후기를 여기에 올리기는 제 감상이 얕은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길지 않아서 보통 일기장에 쓰는데, 이번에는 모아서 써 봅니다.
109, 110, 111번째 음악공연인데,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곡의 작품번호와 같아서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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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번째 공연 관람

[영아] 바리톤 장길용 독창회
2012-08-18(토) 20:00 금호아트홀 전석 1만원
로베르트 슈만- 가곡집 시인의 사랑, Op.48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중 ‘그를 쳐다보아요’, K.584
가에타노 도니제티 - 오페라 ‘라 파보리타’ 중 ‘오라, 레오노라여’
주세페 베르디 - 오페라 ‘오텔로’ 중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

처음으로 본 독창회인데, 의외로 좋았습니다.
가기 전에 슈만의 '시인의 사랑' 가곡집을 들어봤는데,
실제 연주가 훨씬 듣기 좋아서 낮았던 기대를 뒤집었습니다.
독주곡만 고집하던 피아니스트가 슈만의 이 가곡집은 반주했다는 얘기를 읽었는데, 그럴 만 해요.
자리도 건반 보이는 왼편이고 해서 성악가보다 반주자를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곡마다 반주의 느낌이 휙휙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불안한 감이 있는 아름다움이었는데 중반 지나면서 슈만 특유의 큰 기복이 느껴져요.
시인의 사랑 가곡집의 전반 35분이 오랫동안 수고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관악기 독주회처럼 한시간 10분에 끝나고 나왔어요. 역시 힘들었나봐요.

2
110번째 공연 관람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해설음악회 Ⅲ - 위풍당당, 서곡 (지휘 : 임헌정)
2012-08-23 (목) 오후 7:30 ~ 9:00 부천시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 전석 5천원
로시니,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
베버, 오페라 “마탄의 서수” 서곡 작품 277
랄로, 스페인 교향곡 라단조 작품 21 5악장 (Vn. 김지영)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작품 620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작품 76b

부천필은 대략 2년만에 보는 공연이지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부천필이고, 또 역시 임헌정 지휘자였어요.
'해설음악회'의 이미지답게, 초심자와 어린이가 많았지만
대충 연주하지 않는 태도가 느껴지는 부천필도 좋았고,
그에 걸맞게 상급의 관람태도를 보여주는 관객 또한 일급이에요.
예술의전당에서도 열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부천필에서는 관객 때문에 열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어린이나 학생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정도로 관람태도가 좋은 공연도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유독 부천필에서 현악기 활의 움직임이 딱딱 맞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연습을 얼마나 하기에 활이 오르내리는 것까지 딱딱 맞는걸까.
테마가 해설음악회였고, 프로그램이 서곡들이어서 시간은 짧았지만,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이걸 5천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거저 본 것도 좋았습니다.

미리 듣고 갔지만 유튜브로 대충 본 것보다는 역시 실제 공연이 훨씬 멋있었어요.
레오노레 서곡은 중간에 왼편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금관 소리가 나는 부분이 있었어요.
후대의 말러 등에서 시작한 줄 알았는데 베토벤이 이런 걸 시도했다니! 처음 알았어요.

3
111번째 공연관람 & 세번째 오페라 관람 (한국에서 첫번째)

서울시향의 보컬 시리즈 III
2012.08.24(금) 20: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B석 3만원 / C석 1만원(최저)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발췌, 콘서트 버전)
(“정명훈 예술감독, 오페라 지휘의 대가 카를로 리치, 성시연 부지휘자의 지휘” - 뭔지 모르겠는데 별 관심은 없음)

꼭 예매하려던 건 아니고, 자리가 얼마나 남았나 보러 갔더니 딱 한 자리 남아서 덜컥 예매했어요.
원래 제일 싼 만원 C석을 생각했는데, 남은 자리는 3만원짜리 B석이었어요.
실제 예매할 때 제 상한선이 2만원 정도인데, 이번에는 크게 배팅한 거였어요.
발췌라고 해서 엄청 축소한 줄 알았는데 9분 분량만 빠지고 거의 풀버전이에요.
9분은 뭐하러 뺀 걸까;;;

처음에 홈페이지에서 공연정보 찾아볼 때는 여러 사람 이름이 나왔는데
실제 공연은 그냥 정명훈 씨가 지휘했어요.

이하 내용은 1막 후 쉬는 시간부터 메모장을 꺼내 놓고 틈틈이 쓴 내용입니다.
인용한 대사 등은 극 순서대로에요.

-메모한 내용-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합창석까지 거의 꽉 차고,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그 뒤(무대)의 합창단을 합쳐 2500 + 200명이 모인 장관.
이렇게 빽빽한 건 또 처음 봄.
왜 오페라극장이 아닌 콘서트홀에서 할까 싶었는데, 아주 추상적인 무대.
베토벤 합창교향곡처럼 그냥 독창자들이 앞에 서서 노래하고, 특별히 연기도 없었다.
뒤쪽 스크린에 자막(독일어/한국어) 나와서 보기는 매우 편함.
성악 있는 교향곡 느낌 - 음악이 거의 안 끊어짐.
말러가 바그너 영향을 받았는지, 말러 교향곡의 느낌.
이것이 '음악극'인가.
공연 전 찾아본 정보가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반음계가 자주 보임.

1막 : 오후 8시 ~ 9시 20분
2막 : 오후 9시 35분 ~ 10시 45분
3막 : 오후 11시 ~ 12시 5분

처음에 조금 보다가 힘들어서 눈 감았다 떴다 하다가 1시간 후 살아남.
1막 80분 끝나고 꽤 지침.
그냥 오페라나 공연 전반부 끝난 것보다 훨씬 지쳤음.
1막에서는 합창석 오른편에서 '선원'이 노래했는데,
2막에서는 브랑게네가 합창석 왼편에 나와 노래함.
왼편 문이 열리고 금관악기 소리만 들린 것도 있는데,
이런 '멀리서 들리는 소리'효과는 전날 베토벤 서곡에서도 보고 놀란 것.

두 사람은 낮을 저주하고 밤을 찬양한다.
낮과 죽음을 묶어서 사랑을 방해하는 걸로 지칭.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가 연관되어 떠올랐다.
소세키의 소설에서 나오는, 도덕과 사회의 시선을 뿌리치고 '자연'이 시키는 대로(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는 것이 떠오름.
소세키의 소설 하니, 다시 바그너의 부도덕한 연애사가 떠올랐다.

"낮의 위협 따위 무시합시다"
"우리의 밤이 영원하길"
코지마, 베젠동크 부인과 관련된 바그너 자신의 말일까.

"이름도 없고 이름도 없이"
"끝없이, 영원히 하나된 느낌"

2막 후반부(10시 20분)에 나와서 거의 독창하는 마르케 왕의 목소리 멋있음.

바그너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어보기 전에,
막연히 작품 길이의 거대함처럼 음향도 압도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빵빵거리고 쿵쾅거리진 않았음.
오케스트라는 대편성인데 잔잔한 소리가 많음.
들어본 듯한 진행일 때는 약간 상투적으로 느끼기도 함.

정명훈 씨 지휘는 두번째 보는데, 이런 대곡 지휘하는 건 대단하지만
희한하게 나는 임헌정 씨의 부천필처럼 감동하지 못한다. 그냥 냉정하게/무덤덤하게 지켜봤다.
물론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지휘자 같긴 한데,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닌 듯.

정명훈 씨 없을 때의 서울시향은 좋았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다른 사람의 지휘로 듣고 열광했던 것과 비교하면서,
부천필은 임헌정 씨가 있을 때가 좋고, 서울시향은 정명훈 씨가 없을 때가 내 취향인가 하고 느낌.


"신성하고 영원한 망각"

바그너가 시작했다는 '라이트모티브'는 거의 못느낌.
그냥 줄거리 있는 성악 & 관현악의 말러 비슷한 교향곡으로 들음.

"그리움! 그리움!
죽도록 그리운 거지
죽음이 그리운 건 아니야!"

"밤이 나를 다시 낮에 던지고..."

1막은 자막을 거의 안봤고,
2막은 반반, 3막은 자막을 좀더 많이 본듯.

3막 후반 이졸데가 탄 배가 가까이 올 때 금관을 시작으로 꽤 굵은 음향.
이전까지의 잔잔함과 대조되는 대편성다운 음향.

(마르케 왕) "속고 속이는 자리이구나"
"소중한 친구여, 오늘은 또다시 친구를 배반하는가?
너에게 가장 큰 신뢰를 주려고 온 오늘도?"

- 메모 끝 -

1막 끝나고 2막 시작할 때 빈자리가 조금 생겼고,
2막 끝나고 3막 시작할 때는 빈자리가 꽤 보였어요. 귀가 때문인가봐요.
늦게 끝나서 문제라면, 애초에 조금 당겨서 7시~11시로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이졸데의 노래를 끝으로 무대가 어두워지며 끝나고, 관객 반응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제가 본 공연 중 가장 많은 기립박수를 본 것 같습니다.
3층과 합창석에 보이는 사람만 50명 가량,
2층은 안보였지만 꽤 있을 것 같고
1층...너무 많아서 세는 걸 포기했는데 수백 명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습니다.

어지간하면 연주자들이 퇴장할 때까지 박수치며 여운을 즐기는데
이날은 비도 오고 택시로 2~3만원 깨질 것 같아
부모님이 차로 데려오러 오셔서 그 박수의 물결을 뒤로 하고 나왔습니다.
2층, 1층 내려가는데 모니터 등을 통해 보이는 열광의 물결이 대단했어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0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