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요즘 내 머리속에 가득찬 생각



하지만,

그만두는 것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나는 차마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고

하루종일 머리속으로만 외치고 또 외친다



출근길,

이른 아침부터 로비를 가득채운 환자들을 볼때면

어디서 소문을 듣고 이리들 오시는건지

날로 높아지는 고대병원의 명성에

병원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높은 자부심이 든다

이러다 곧 탑5에 들것만 같은 예감



하지만 자부심도 잠시,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끝없이 나오는 환자명단을 확인하고나면

오늘도 또 깊은 한숨을 쉬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종일 쏟아지는 오더 오더 오더

그래...

탑5 에 들려면 이정도는 감수해야지...

하지만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좀처럼 줄지 않는 환자를 볼때면

아..진짜 너무한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물론 내가 병원을 그만두고 싶은건

단지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뻔뻔한 일부 국회의원들처럼

일은 조금만하고 놀면서 월급받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돈벌려고 출근했으니 8시반부터 5시반까지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는건

근로자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종일 꽉 채운 스케줄보다

진짜 날 기운빠지게 하는것은



병원의 태도다



이렇게 부려먹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

더! 더! 더! 더!

더 많이를 요구하는 뻔뻔함,

왜안돼? 왜못해? 당장해줘! 당장해놔!



이미 나의 한계치를 넘어섰는데

그건 당연히 내가 일할 업무량인듯 말하며

내게 그 이상을 요구할때

난 정말...

이 병원을 때려치우고 싶다





*****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는

밖에선 취업이 안돼 저조한 취업률, 청년실업 어쩌고 하면서

정작 나처럼 취업이 된 정규직들은 너무나 퇴사를 꿈꾼다

(오죽하면 '퇴사를 권하는 사회' 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왜 다들,

그토록 원하는 정규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걸까?



대학병원, 중소병원, 대기업, 작은 식당,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대부분 한국의 오너들은

직원이 근무시간의 80%만 일을 하면 다들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는 당~연한거고

120%는 일을 해줘야

'음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군~'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부서에 한사람당 120%를 일할수 있는 인력만 뽑는다





사실 인력라는 것이

직원 중 한사람이 휴가를 갔을때도

그 부서가 원활히 돌아갈수 있게 끔 주어야하는 것인데



** 한 부서에 5명이 근무한다고 가정했을때

1인당 평균 연차가 20개라고 치면

1년에 100일은 한 사람이 휴가 중이란 뜻이다

1년에 출근하는 날이 250일이라고 한다면

일주일에 이틀은 4명이서 근무를 하는 셈이니

아무도 휴가를 가지않은 날

1인당 업무량이 80%정도가 되어야

휴가자가 있을때 100%가 넘지않게 업무를 처리 할수있단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평소에도 100%는 커녕

1인당 120%씩 일을 하는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으니

누구 한명이라도 휴가를 가는날엔

우리가 체감하는 업무량은 150%,

둘이서만 일하는 부서는 200%까지 된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도 우리가 그만둘수 없는건

대한민국에 구직자는 널려있고

날 대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슬픈 현실때문...



비정규직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보장된 정년,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은퇴후 사학연금까지

그정도 대우면 됐지 무얼 더 바라는거냐 말할지도 모른다



어른들도 절대 그만두면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막상 그만두면 후회할거라고

지금 취업난이 얼마나 심한지 알고나 있냐고



그래 헬조선이라 부르는 대한민국에서 이곳은 천국이겠지



매일매일 힘겹게 일하다 지쳐 퇴근하는 지독하게 불행한 천국



인력을 더 충원하면

기존의 직원들이 떠맡고 있는 과도한 업무가 줄고

대한민국의 취업난을 해결하는데 일조를 할수 있을텐데

대한민국의 오너들은 그럴생각이 없다

아무리 쥐어짜고 쥐어짜내도 군소리없이 묵묵히 일하는 근면성실한 직원들이 있으니까





사람의 가치가

고작 쓰고버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세상

이곳에서 난 버림받지 않으려 오늘도 꾹 참고 출근을 한다





정시에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지쳐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싶다

행복한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다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 소박한 나의 소망이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꿈일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8 2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