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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펌] 조선시대의 공부 모습에 대해 알아보자.araboza
高大人
등록일 : 2020-01-24 20:56:00 | 글번호 : 22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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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에 대한 집착

과거는 겉으로는 관리 선발 시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관리가 되고 싶던 욕심이 없더라도 과거는 그 사람에게 큰 의미를 차지했습니다.

“어진 이를 구하는 방법을 오로지 과거에만 의지하게 되어, 이 길로 출세하지 않으면 인재가 아니라 일컬어 손가락질하고 으레 속된 벼슬아치로 대우합니다”
-성종실록 권129 성종 12년 5월 신축

여기서 알 수 있듯, 집안 덕분에 운 좋게 지방에서 관리를 하고 있던 사람이라도 과거를 통한 것이 아니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기 때문에 ‘벼슬’ 자체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들도 과거 합격에 힘썼습니다. 실제로 지방 수령정도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소과에 응시하려 했다는 기록들도 있습니다. 꼭  벼슬이나 부 때문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과거 합격 자체에 큰 의미 부여를 하였습니다.

과거가 곧 사람의 됨됨이, 능력, 효 등을 보여주는 지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농부들도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과거에 도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영의정 등이 이르기를, 과거 날짜를 점점 뒤로 물리면 농사 때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방의 가난한 유생들이 양식을 싸가지고 오느라 분주하게 될 것이고, 이 때문에 농사를 잃어 아사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종실록 권99 중종 37년 12월 을유





2. 현실은 시궁창

“이조가 아뢰기를, 우의정 이정구가 탑전에서 아뢰었던 대로 요즘 들어 거재하는 유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인조실록 권21 인조 7년 7월 정미

“대사성이 상소하기를, 신이 삼가 보건대, 성균관 내의 생원과 진사로서 거재하는 자는 겨우 수십 명인데 이들은 대비 원점을 위해서이고, 하재생 20명과 사(四)학생 각 5명은 모두 가난한 선비로서 대부분 지방에서 온 자들입니다”
-효종실록 권7 효종 2년 7월 계묘

흔히 과거 공부 모습이라고 하면, 성균관에서 유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실 겁니다. 그러나 조선의 최고 학부인 성균관조차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세종, 성종 등 그나마 조선이 체계적으로 돌아갔던 때에도 성균관에 기거하며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유생이 10~20%조차 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종 때에는 성균관의 정원이 2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학생이 2명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 당시 서울에 있던 또 다른 학교들, 그러니까 성균관보다 하급 과정의 학교라 할 수 있는 ‘사(四)부학당’도 마찬가지로 정원이 각 100여명이었음에도 학생이 10명 내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명종 때에는 아예 학생이 다니지 않아 기숙사 뜰에 풀이 무성해 마치 빈 절 같다는 한탄도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왜 유학생들은 학교를 기피했을까요?

“서울의 세력 있는 집의 자제들은 요행이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도 곧 거처와 음식이 별로이기 때문에 모두 집안의 힘을 빌어서 관직을 얻어 나가려 한다”
-태종실록 권33 태종 17년 윤5월 기사

“대사헌이 아뢰기를, 부모 덕으로 벼슬을 할 수 있는 그 빠른 길을 버리고 누가 오래도록 성균관과 사(四)부학당에서 고생하면서, 아침에는 나물죽을 저녁에는 소금밥을 먹는 괴로운 길을 택하겠습니까?”
-중종실록 권22 중종 10년 윤4월 경진

시설과 음식이 별로였다는 정말 어이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대사헌 김귀영이 상소하기를, 성균관은 인재를 교육시키는 데 관계된 곳인데, 선생들이 대부분 합당한 사람이 아니어서 늙고 병든 사람이 아니면 거의 다 인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명종실록 권30 명종 19년 2월 계축

“지사 김극픽이 아뢰기를, 스승으로 마땅한 사람을 골라 임명하여 오래도록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균관과 사학의 교관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유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학부형이 된 자는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하여, 그 자제로 하여금 모두 동네에서 잘 가르치는 사람에게 수업받게 합니다. 이래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점점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중종실록 권59 중종 22년 9월 기묘

사실 교관들의 자질이 별로였던 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백성을 직접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관직에 임명되기를 바랐던 까닭입니다. 유능한 사람이 교관직에 자원하는 경우는 드믈었고, 교관에 대한 인식도 별로였습니다.

원점법이라 하여 수업일수를 채워야 대과 응시가 가능하게끔 규정을 바꾸기도 했지만 대리출석을 하거나, 부모가 병들었다고 허위 증명서를 제출한다든가 편법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은..

“윤은보가 아뢰기를, 성균관과 사학에 모여 학업을 연마하지 아니하고 서울과 지방의 선비들이 사사로이 집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권88 중종 33년 10월 계묘

과외를 받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죠?





3. 점입가경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선 ‘초집’이 유행했습니다. 초집은 약간.. 모의고사 세트? 느낌입니다. 그동안의 기출을 바탕으로 나올 법한 문제들을 수록해놓은 책입니다. 초집은 당연히 국가에서 발간하는 것이 아니고, 과외하는 선생들이 발간했다고 합니다.

“간원이 말하기를, 사성오경의 원문은 한정되어 있으며, 제목거리는 한정되어 있으나, 그 쓰임은 끝이 없으므로 올해 낸 문제가 혹 다음 해에 나오기도 하고, 서울에서 출제된 문제가 지방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명종실록 권14 명종 8년 6월 갑산

그리고, 사서오경이 많아봐야 책 몇 권이죠. 문제를 출제해봐야 거기서 거기입니다. 여러분은, 수능 연계 EBS 교재에 ‘광장’이라는 소설이 실리면, 소설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실 건가요? 당연히 아닐 겁니다. 내용을 요약해놓은 글을 읽고, ‘은혜’, ‘윤애’, ‘명준’ 주인공의 특성을 파악하고, 대충 ‘광장’, ‘부채’, ‘갈매기’가 의미하는 바를 외우겠죠. 광장이라는 책이 아무리 길고 어려워도 어차피 문제는 저것들만 알면 쉽게 풀 수 있게 나오니까요. 비슷합니다.  사서오경을 귀찮게 다 읽을 바에는, 초집 몇 권 구해서 푸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초장에서 강론하던 법이 매우 좋은 것이었는데, 오늘날 이것을 폐하오니 유생들이 모두 초집만 익히고 경서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태종실록 권21 태종 11년 5월 무진

“사헌부에서 상소하기를, 온 나라 자제들이 초집만을 과거 공부의 좋은 수단으로 여겨 책자로 만드는 경박한 풍습이 굳어져 비록 금지하는 법이 있어도 이제는 막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종실록 권7 세종 19년 6월 기미

“충청도 도사 김일손이 상소하기를, (...) 이보다 더 심한 자는 성경을 철집하여 초집을 지어 입과 귀에만 익혀 빨리 과거할 준비를 삼고 있으니, 이런 것으로써 선비를 구한다면 적당한 인재 얻기를 바라기가 어렵습니다”
-연산군일기 권5 연산 1년 5월 경술

“허굉이 아뢰기를, 세종조에는 책 지니는 것을 금단하는 법령을 엄중하게 했기 때문에 초집한 참고 서적을 잘게 써서 머리털 속에 감추기도 하고 입 속에 넣기도 하여 시험장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공공연히 가지고 들어가며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으니 이 폐단이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중종실록 권55 중종 20년 11월 신유

“간원이 아뢰기를, 가끔씩 글 잘하는 사람이 한 경서의 논술 문제들을 다 지어 놓고 자손에게 전해 대대로 생원 정도에는 합격하는 자도 있습니다”
-명종실록 권14 명종 8년 6월 갑신

나쁜 짓들은 자기들끼리만 하든가, 하다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자를 비웃는 지경에 이릅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명예만을 위하고 진실한 공부에는 힘쓰지 않습니다. 간혹 열심히 글을 읽는 사람이 있으면 도리어 멸시를 받을 정도입니다”
-세종실록 권49 세종 12년 8월 경인

“사경 기준이 아뢰기를, 오늘날은 간혹 ‘소학’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경박한 무리들이 다투어 서로 비웃기 때문에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학생들이 사모하는 것은 과거 급제요, 바라는 것은 부귀이며, 옛 사람 공부하는 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떼 지어 웃고 헐뜯습니다”
-인종실록 권2 인종 원년 4월 정미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면서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과거 급제를 위해 위장전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륻 들어, 중종이 영릉에 행차를 가게 되었을 때, 어가 행렬이 지나가는 지역의 거주민을 대상으로 특별 과거 시험을 실시할 것을 명했는데, 많은 서울 유생들이 원래부터 그 지역에 거주했던 것처럼 여러 서류를 위조하여 응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종실록 권77 중종 29년 7월 정해)





댓글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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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댓글 1 高大人 2020-01-24 21:09:03
공교육 붕괴는 조선의 유구한 전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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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댓글 2 高大人 2020-01-24 23:05:36
6 그나마 저 시절에는 한명회 윤원형 김좌근처럼 천하의 세도가들도 과거를 못 붙으면 고위직 임명이 절대 안 되는 최소한의 양심들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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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高大人 2020-01-24 21:00:23
휴머니스트....?


댓글 2 高大人 2020-01-24 21:02:54
흒머..


댓글 3 高大人 2020-01-24 21:06:38


흒머추!


댓글 4 BEST 高大人 2020-01-24 21:09:03
공교육 붕괴는 조선의 유구한 전통이네


댓글 5 高大人 2020-01-24 22:45:04
흒머추


댓글 6 高大人 2020-01-24 23:02:54
대한민국은 조선에서 전혀 근대화되지 못한 것 같아요.
어쩜 지금이랑 저리 똑같을 수가


댓글 7 BEST 高大人 2020-01-24 23:05:36
6 그나마 저 시절에는 한명회 윤원형 김좌근처럼 천하의 세도가들도 과거를 못 붙으면 고위직 임명이 절대 안 되는 최소한의 양심들은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댓글 8 高大人 2020-01-24 23:38:12
와... 인쇄한다음 다시 타이핑 하신건가요 ㄷㄷ


댓글 9 高大人 2020-01-25 00:50:12
휴머니스트가 제가 아는 그 휴머니스트 말하는건가요...? 공군??


댓글 10 高大人 2020-01-25 07:52:58
9/ 네..ㅎㅎ


댓글 11 高大人 2020-01-25 07:55:05
8/ 한글파일 보안성 검토 후 사제망으로 돌릴 수 있어요! 앞으로 자주 퍼올 예정입니당


댓글 12 高大人 2020-01-25 09:58:40
11/ 아니 그런게 있어요? ㄷㄷ


댓글 13 高大人 2020-01-25 10:00:20
와 휴머니스트 아직도 있나요??
거기 진짜 양질이면서 흥미로운 자료 되게 많았는데 ㅋㅋㅋㅋ


댓글 14 高大人 2020-01-25 10:10:49
12/ ..담당 부서에 친구가 있어야죠


댓글 15 高大人 2020-01-25 10:28:34
12/ 간부면 되긴하는데 병사로는...


댓글 16 高大人 2020-01-25 10:29:46
15/ 앗아아... 글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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