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고대인이 되기 위한 3대 관문이 4.18 구국대장정, 정기고연전, 그리고 사발식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사발식은 고대생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할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사발식은 일제시대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이 종로경찰서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구토를 하며 표출한 저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전설’같은 연원이 전해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발식이 야만적이며 없어져야할 인습이라고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일부 단과대와 학과에서는 사발식의 강압적인 부분은 없애고 행사의 취지는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사발식을 안하면 고대생이 아닌가요

강압적인 사발식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일부 학과와 동아리에서 사발식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한 학과 사발식에서는 한 사람 당 7병의 막걸리를 마시게 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선배들이 만족할 때까지 FM(Field Manual)을 해야 한다. 참석 여부는 자율적이지만 무언의 압력이 가해지기도 한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서는 사발식 참여 강요에 대한 글이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술은 먹고 싶지 않았지만 사발식을 해야 고대생이라며 치켜세우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일부 과에서는 가지 않는 이유를 적어 제출해야 해 신입생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복금태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은 “참석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발식 자체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일부 과에서는 술을 마시고 토하는 현재 사발식 문화에 대해 고민하며 사발식 존폐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다. 문연진 언어학과 학생회장은 “현재의 사발식이 이전의 나를 뱉어내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형식 유지를 위해 의미를 정당화하는 작업인 것 같다”고 밝혔다.


어떻게 고대인의 문화가 됐나
흔히 사발식을 시작하기 전 각 단과대 학생회는 ‘일제에 저항한 선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다’며 사발식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사발식이 일제강점기부터 지속적으로 실시됐던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고재희(농업경영학과 60학번) 교우는 사발식이 무엇인지를 되물으며 “1960년에는 4·18의거와 한일협정반대투쟁을 하던 때여서 그런 것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발식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농업경제학과(現 식품자원경제학과)의 사발식은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장병식(농업경제학과 70학번) 교우는 사발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정명갑(농업경제학과 76학번) 교우는 “사발식에 참여했지만 중간에 도망나왔다”며 사발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놨다.

사발식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엄청난 양의 막걸리를 마시고 토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문화가 대학가를 지배해 선후배 관계가 강압적으로 변했다. 이동원(행정학과 88학번) 교우는 “신발에 막걸리를 담아 마셨던 기억이 있다”며 “당시 어떤 과는 막걸리를 마시다 토한 것을 다시 마시게 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진호(영어교육과 93학번) 교우는 “냉면 그릇에 2병정도 받아 마셨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며 “하지만 친목을 다지는 입단식의 경우 머리를 감거나 양말을 빤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은 있었다”고 회상했다.


취지를 살리며 악습은 버리다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 한번 마셔 보자!"
11일 한 식당에서 진행된 바이오의공학부의 사발식은 다른 학과의 사발식과 마찬가지로 막걸리찬가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원하는 학생만 신청을 받아 막걸리를 마시고 토해냈다. 다른 학생들은 막걸리를 먹지도 토하지도 않고, 단지 막걸리로 입을 헹군 다음 뱉어냈다.

바이오의공학부는 막걸리를 ‘뱉어낸다’는 의미를 그대로 지키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에 변화를 줬다. 김승욱 바이오의공학부 학생회장은 “여태까지 사발식을 강압적으로 진행했었다는 생각에 변화를 꾀하게 됐다”고 말했다.

몇몇 학과는 새내기가 참여해 사발식 진행여부부터 방식까지 논의하는 사발식 간담회를 진행한다. 전누리 전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은 “사발식이라는 행사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한 후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사발식에 담겨있는 의미는 살리고 진행하는 방식에는 변화를 주는 학과도 있다. 자유전공학부는 △나에게 쓰는 편지 △올해의 각오 △게워내고 싶은 것을 말한 후 원하는 만큼의 막걸리만을 마시도록 했다. 김인서(자전16) 씨는 “사발식 전에 사발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환기가 있어 새내기 모두가 만족했다”고 말했다.

글 | 심기문, 최윤정 기자  news@kukey.com
사진 | 조현제 기자 aleph@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0 01:3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