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시간강사 기상도 : 흐림

우리학교 인문계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민주광장을 지난다. 지금 그 민주광장 한복판에는 낡은 텐트 하나가 외롭게 서 있는 것도 봤을 것이다.

“나는 학교를 좀 다녔다”고 생각하는 학우들 중에 이 텐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학교 김영곤 강사가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보장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학교 본관 앞에 텐트를 치고 생활한 것이 지난 2011년부터다. 학교와의 치열한 갈등 끝에 텐트는 본관에서 민주광장으로 옮겨가야 했고, 그마저도 올해 초엔 괴한에 의해 훼손됐다.

안타깝지만 이걸 읽는 학우들이 위 사실들을 다 알아도, 더 이상 텐트를 특별하게 혹은 이질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에게 광장 속 텐트가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텐트도 그대로다. 1월 이후 김영곤 강사의 근황과 활동을 인터뷰를 통해 정리해보았다.

기자 : 지난 1월 텐트 훼손 사건 이후 어떤 활동을 하며 지내셨나?

김영곤 : 이전과 같이 다른 학교에서 강의하셨던 분들의 해고무효 소송을 돕는 동시에 여의도와 학교를 오가며 텐트 농성을 계속했다. 오늘(인터뷰가 진행된 4월 8일)은 오후 12시부터 국회 앞에서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확보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지난 2007년 국회 앞에 텐트를 설치하고 나서 투쟁한지 일수로 치면 2406일째다.

기자 : 학교나 교육 당국과는 어느 정도 진척이 있나?

김영곤 : 대교협에서 교원지위 확보가 중요한지 강사 처우개선이 중요한지를 작년에 교무처를 통해 강사들에게 조사했다. 비율상 3:7로 ‘강사 처우개선’이 높게 나왔다고 하는데, 이 결과는 학교 행정기관을 통한 설문조사였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니겠나.

기자 : 학교 텐트만 따지면 3년, 여의도에서부터 시작하면 7년째다. 지치진 않으셨나?

김영곤 :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함께 하는 김동애 선생님은 여성이라 체력도 달릴법하고, 지병도 있는데 다행히 그럭저럭 잘 넘기고 있다.

원래는 집도 인천 부평에 살고 있었는데, 투쟁에도 돈이 필요하지 않나. 더 이상 지급되는 강사료도 없고, 주변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매우 어려워 고향인 당진으로 2011년 이사를 갔다. 텐트는 직접 있을 때도 많지만 학부나 대학원 학생들이 돌아가며 텐트를 지키는 경우도 있다.

기자 : 벌써 8년째인데, 시간 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처우 개선 문제가 해결되기 참 어렵다는 걸 느낀다. 학내, 학외를 통해 앞으로 어떤 투쟁 방식을 강구하고 있나?

김영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내 강의 구성원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걸 막고 국민 모두가 대학 교육과 관련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져야 비로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겠나. 언론도, 강의하는 전임교수도, 학생들도 계속해서 말하고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시간강사는 명목상으로나마 지난 2011년 교원 지위를 회복했으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연금법도 적용받을 수 없다. 전임교수만큼의 강의를 해야 하는 반면, 안정된 연구 활동과 지위를 보장받진 못하는 이들의 현실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ㄴ. 주차, 미화 노동자 기상도 : 약간 흐림

2014년 첫 학기 학교생활은 상당히 정리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학교를 상징하는 본관도 작년에 이어 여전히 공사 중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내 곳곳이 청소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인 이유가 컸다. 우리학교 주차, 미화노동자들이 ‘열흘’이라는, 학내 미화노조로는 유례 없는 긴 기간 동안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파업은 노동자들의 요구안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들은 서경지부의 모든 대학의 주차, 미화 노동자들이 학교측과 타협에 성공하고, 남은 쟁점들이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파업조끼를 착용하고 있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직 그들은 조끼를 입고 일하고 있다.

해결된,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쟁점은 무엇일까? 윤명순 서경지부 부분회장과 인터뷰했다.

기자 : 아직 주차, 미화노동자가 조끼를 착용하고 일하는 모습을 본다. 타협을 본 쟁점들과 아직 타협을 보지 못한 쟁점들은 뭐가 있나?

윤명순 : (이전과 같이) 6,200원으로 시급 인상, 식대 90,000원 지급, 상여금 180,000원은 확정됐으나 학교 측이 ‘무노동 무임금’을 고수하고 있어 완전히 타협을 못보고 있다. 파업 기간 동안의 임금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기자 : 학내 주차, 미화 노동자분들끼리는 이번 파업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나?

윤명순 : 아직 완전히 타결은 안됐어도, 노동자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낸 성과니까.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서로 그런 말들을 한다.

기자 : 파업으로 업무 환경이 일부 개선됐다하더라도 아직 근무에 어려운 부분은 남아있을 텐데?

윤명순 : (곧바로) 당연히 아직 많다. 곧 있으면 여름인데, 땡볕에서 계속 일하면 얼마나 불쾌한가. 주차, 미화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이 필요해서 학교 측에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신설이 안 된다면)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샤워시설을 함께 사용하게 해달라고도 요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미화노동자가 들어가 미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출입문에 ‘미화 작업 중’이란 신호를 줄 수 있는 표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들어가 있는 사람이나 들어오는 사람이나 평소에 움찔하지 않느냐(웃음). 학교측도 이 부분은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간은 경제활동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한다. 학내 주차, 미화노동자들의 파업은 이것이 정확히 반영됐고, 그렇기에 개강 이후 열흘 동안 학우들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불편을 겪었지만 별다른 불만 없이 이들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이들의 기상도는 일단 ‘아직 맑음’이다. ‘맑음’은 파업을 통해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인간적인 삶’에 가까워졌기 때문이고, ‘아직’은 서경지부의 일부 대학에서 합의가 덜 된 상태인데다가 학교가 무노동 무임금을 고수하며 파업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ㄷ. 안수용 할머니 : 맑음(?)

안수용 할머니와 관련한 이야기는 역사가 오래됐다. 무려 20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가 긴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는 반면, 요즘 대학 다니는 학우들은 모를법하다.

안수용 할머니는 하숙집과 카센터를 운영하며 남편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1995년 그들이 살던 곳에 화재가 나 10평 정도가 소실됐는데, 당시 신재균 의원이 성북구청에 불법 건축물이라는 허위 진정을 낸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원 소유자인 학교 측과도 점유에 있어 합의가 되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성북구청은 사실 확인 없이 곧바로 철거에 들어가 할머니는 한동안 거처를 잃고 떠돌아다니게 된다.

가장 최근엔 2012년 고대공감대 총학생회 때,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안수용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성북구청과 신재균 새누리당 의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는데 요즘 들어선 학우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움직임이 없다.

그래서 기자 본인이 누구보다 이 기사에 담아내고 싶었던 인물이 바로 안수용 할머니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수용 할머니는 ‘지금은 인터뷰할 수가 없다’고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하셨다. 성북구청과 여느 때보다 진지한 협상 중인데다가 얼마 뒤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 내부 혹은 이와 가까운 곳에서만 봐도 우리 주변에 ‘잊혀서는 안 되지만 잊어가는’ 사람이 많다. 해결되지 않은 쟁점에 약자가 서 있다면 그곳에는 순간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느새 잊어버린다면 그 쟁점은 해결되지 않고 남아 계속된다.

앞으로도 학우들의 관심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민주광장의 텐트도, 조끼를 입은 주차, 미화노동자들의 모습도, 거처 없이 지내시는 안수용 할머니의 모습도 그대로일 것이다.

최시영 기자(dpthtm090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