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밖에도 빛나는 청춘은 있다

대학 안에 갇힌 20대

‘대학생’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단어들이 함축돼 있다. 20대, 청춘, 열정…….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 단어들을 ‘대학생’이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다.

20대 초중반, 대학생이 있고 대학생이 아닌 이들이 있다. 그들을 여러 단어들로 지칭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지칭해보려 한다. ‘비(非)대학생 : 대학생이 아닌 20대 초중반의 청춘’ 인생의 여러 선택지 중에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 다음 순서를 당연히 ‘대학’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학이 20대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길은 아니다.

여기 네 명의 비대학생이 있다. 대학생인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사회에서 혹은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는 길은 어떤 모습인지 들어봤다.

대학이 아닌 길을 선택하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손현정(여‧20세) 씨는 올해 동부그룹 계열사에 취업해 현재 재경팀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정 씨는 처음부터 진학이 아닌 취업을 목적으로 서울 소재의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언니가 저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걸 보고 상업고등학교에 가게 됐죠” 대졸자도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와 등록금도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쳤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대부분 현정 씨처럼 취업을 했다.

군입대를 앞둔 정민호(가명, 남‧21세) 씨는 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공업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 많이 진학하는 추세라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도 대학 진학을 바랐지만 민호 씨는 취업을 선택했다. “공부를 따라갈 자신이 별로 없었어요. 요새 언론에서 청년실업에 대해 많이 얘기를 해서 대학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막상 일자리를 알아보니 작은 기업에서도 대부분 대학 졸업장을 요구했고, 고졸인 민호 씨가 취업할 수 있는 직장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결국 그는 지역 공단의 생산직으로 취직을 했다.

이상호(가명, 남‧22세) 씨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진학을 준비했지만 원하던 대학에는 갈 수 없었다. “재수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결국 상호 씨는 대학 진학을 그만 두고 혼자 원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사실 실업계도 아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오히려 취업이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은 돼요. 그렇지만 취업만을 위해서 대학 졸업장을 받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유원호(가명, 남‧25세) 씨는 한때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전공 공부에 회의감을 느꼈고 의욕과 흥미도 잃어버렸다. “성적이 떨어져서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맞고 나니 벼랑 끝에 서서 공부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도망치듯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거란 자신은 없었지만 더 늦기 전에 대학에서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계속 방황하는 원호 씨를 지켜본 부모가 먼저 자퇴 이야기를 꺼내 그는 올해 여름 용기를 내서 대학을 자퇴했다. 큰 결심을 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막상 대학에서 나오고 나니 무척이나 허무하고 불안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불안했던 건 당장 눈앞에 닥친 진로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과라도 있으면 그에 맞춰서 진로를 찾아볼 수라도 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많이 막연하고 다급했죠. 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무척 외로워요” 동아리에서 영상 기획을 했던 원호 씨는 그 경험을 토대로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방송 분야에 일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모두 대학 졸업이 필수였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원하는 직업에 지원조차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무척 암담하더군요”

사회의 20%라는 불안

‘사회의 80%가 대졸자인데 불안감은 없나’라는 질문에 민호 씨는 “한국 사회의 20%에 속한다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고 대답했다. “소위 말해 ‘가방끈이 짧다’는 게 불안해서 가끔 어떻게든 대학 졸업장을 딸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전문대에 간 친구들이 차라리 일찍 취업할 걸 그랬다며 한탄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정 씨 또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대학이 아닌 사회로 첫발을 내딛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걱정은 ‘고졸인데 무시당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아직 우리나라는 대학 안 나온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지는 않잖아요. 나중에 이직하거나 결혼할 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했어요” 다행히 직장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오히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현정 씨를 대견하게 생각하거나 어린 현정 씨를 더 챙겨주는 사람도 많았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대학 다니는 동안에 여러 경험을 하고 경력을 쌓은 거니까 지레 겁먹고 자신감을 잃지는 않으려구요”

상호 씨는 불안보다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불편할 때가 많다. 주위에서 우선 대학에 가라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상호 씨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에 가지 않아서인지 주변 어른들 중에는 한심하게 보는 분도 많아요”

‘대학’이라는 경험은 부러워

‘대학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라고 묻자 현정 씨는 웃으며 “부럽죠, 특히 직장인은 방학이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또래끼리 함께 모여 있다는 것도 부러운 점이다.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다보니 공감이 안 되거나 대화가 불편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해보지 못한 경험이 궁금할 뿐이죠”

민호 씨는 “학생이란 신분은 부럽다”고 대답했다. “사회에 나올 때까지 시간이 좀 더 주어지니까요” 그런 생각은 장래가 한정돼 있을 거란 생각이 들 때 더 강해졌다. 민호 씨가 지금 근무하는 생산라인 직원들은 대부분이 고졸이라 현장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종 한계를 느낀다. “학력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가끔은 들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정 부분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요”

원호 씨는 “대학생을 보면 전공이 어떤 건지 알고 있을까, 적성에 맞나, 그런 생각은 가끔 해요”라고 대답했다. 대학에 입학해 자퇴하기까지 원호 씨가 깨달은 건 대학에 가는 일이 단순히 ‘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입학하기 전에 전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은 같아

요즘 원호 씨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로를 탐색하는 중이다. 이왕이면 유통기한이 긴 직업을 찾는 것이 그의 목표인데,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어떤 기술을 배우면 좋을지 찾아보고 있다. 현정 씨는 두 가지 길을 두고 고민 중이다. 3년이 지나면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어서 야간대학을 다닐지, 아니면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더 경력을 쌓고 회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민호 씨는 내년에 군대에 가기 때문에 진로를 천천히 결정할 생각이다. “대학 진학도 생각하고 있는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등록금도 그렇구요.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결정할 생각이에요”

신희성, 정진구, 조은지 기자 news@kukey.com
일러스트 최다희 전문기자
기사원문 고대신문 9월 17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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