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학벌사회라는 말은 이제 지겹다. 물론 이 학벌사회에서 고대생은 이른바 ‘SKY’이라는 명칭 속에서 승리자라는 말 듣기도 한다. 하지만 학벌사회의 부담은 고대생들도 피해가지 못한다.

고대생이 가져야할 의식에 대해 두 명의 교수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대 출신의 천홍구(보과대 생체의공학과) 교수님과 이화여대 출신의 봉미미(사범대 교육학과) 교수가 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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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생으로 만드는 1%의 성과

천홍구
보과대 교수
생체의공학과

한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미국의 한 주립대에서 일하면서 저는 양국의 대학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갔던 주립대는 저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분석화학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많은 교수들이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었기에 그 학교 학생의 구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몇 가지 특이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미국 대학은 입학사정에서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기에 우리와 같은 커트라인이라는 개념이 모호합니다. 다만 제가 있었던 곳은 대략 10%선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9%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더 유명한 대학으로 가고, 9~10%의 학생들만 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있었던 주립대에는 성적 10%의 학생도 많이 있지만, 더 우수한 학생도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학교의 교수들이 그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10%의 학생들과 함께 그렇게 훌륭한 성과를 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누가 학부에서 어떤 수업을 수강했는지 크게 관심 갖지 않습니다. 실제로 특정 과목을 배운 학생이 스스로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상대방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농담반 걱정반으로 ‘여러분은 어떤 과목을 수강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 수업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보니 학생들 중에 본인이 어떤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면서 당당하게 다른 분야 전문가 앞에서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실에 왔을 때 별 적응기간 없이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수능성적 10% 정도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들도 학생들의 능력에 대해 별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접하면서 저는 그 원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대답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미국의 몇몇 대학에 교수임용 지원을 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당시 최종 후보가 되어 면접을 하러 갔는데, 평가 위원 중에 저의 출신학교를 문제 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탈락했습니다. 서울대 학부 출신으로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교수임용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당신이 가능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오랜 기간 그 학교에서 뭘 배웠겠느냐’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도 한국의 입시 상황을 대강 알고 있어서,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고 그 학생들은 쓸 만하다고 인정하는 것이지 그 특정 대학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가 깨달은 미국과 한국의 대학교육 차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인들은 전문가의 최종학력, 즉 박사를 어디서 하고 박사후연수를 누구와 했으며 어떤 추천서를 받았느냐를 중요시하지, 출신 학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경력이 높아질수록 박사학위조차 중요하지 않고 업적과 명성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 교육이란 연속된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연속된 교육이 좋은 결실을 맺어 10%의 학생을 우수한 전문가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에는, 대학에 그 동안 많은 투자가 축적되고 두터운 전문가 집단에 의해 월등한 내용의 수업과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 교육을 시간과 자본을 비롯한 여러 기회비용의 투자로 생각하며 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의 태도가 핵심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은 대학 교육을 공공재의 개념으로 바라보며, 입시성적순으로 그 공공재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또 그들을 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우리 사회는 그 정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을 대단한 성취로 여기며, 여기에서 대학의 획일적 서열화와 부작용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여러분께서도 대학교육을 받아보셔서 아시겠지만, 고등학교 3년간의 학습량과 수준은 매우 미약한 것입니다. 그 미약한 내용의 학습에 대한 평가의 결과가 여러분의 대학교 간판입니다. 대학부터가 진정한 전문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있어 교육이란 대학입시와 거의 동의어이며, 따라서 대학 입학과 함께 많은 학생들이 목표를 상실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번 대학 간판이 정해지면 그것이 그 사람의 경력에 끝까지 따라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선입견을 극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열악한 환경과 목표의 부재, 그리고 제한된 꿈으로 인해 우리의 대학교육은 결실을 맺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업체를 비롯한 여러 인사평가에서도 수강과목이나 성적을 비롯한 대학교육을 신뢰하지 않게 되며, 그 결과 그냥 대학간판을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적어도 열심히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의 서열화를 더욱 고착시킵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10% 안에 드는 사람들을 그 안에서 서열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긴 인생을 통해 연속된 교육과 성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이자 이 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대학이 많은 투자와 함께 발전하고, 활발하게 학문에 기여하는 교수님들이 여러 대학에 퍼져 특정 분야에 경쟁력을 강화하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정당한 평가가 사회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대에서 고려대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고려대에서 연세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사원문 고대신문 1691호 3월 19일 자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