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흘러가는 날 중 하루였던 3월 31일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늘 그렇듯 지하철에서 영양가 없는 웹서핑을 하다가 한 웹툰을 읽었다. 단원고에 다닌 기억이 상처로 자리 잡은 한 아이가 낯선 이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만화를 다 읽은 그 자리에서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와 관련된 스토리펀딩에 결제했다. 정경대 후문에 도착하자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해 서명운동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엔 지나쳤을 책상에 다가가 이름과 주소와 서명을 남겼다. 그날 저녁에 있던 세월호 유족 간담회에는 가지 않았다. 바쁘단 이유로 노트북 앞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저녁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날 지배했다.  


문득 낮에 발견했던 개나리가 생각났다. 봄은 겨울 내내 텅 비어있던 종이에 노란 물감을 툭 뿌려놓았다. 어느 새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보다 마음이 성급한 개나리가 드문드문 정경대 후문 담벼락에 피어 있었다. 봄이 왔구나 실감하는 것도 잠시, ‘노란색’을 보는 것만으로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그동안은 잊고 있었으면서 4월이 되니까 기억하는 척, 진상규명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내본 적 없으면서 양심 있는 척한단 생각이 들었다. 서명하고, 펀딩에 돈을 내는 일은 면죄부를 사는 느낌이었다.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SNS에서 ‘4·16 인권선언 노란리본 셀카’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리본이나 소품을 촬영한 사진이 SNS에 피어오르고 있다. 정경대 후문 담벼락엔 노란 꽃들이 길게 늘어설 것이다. 정경대 후문을 이용하는 고대생이라면 4월 중순 쯤 담벼락에 가득한 노란색을 보며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킬 지도 모른다. 개나리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 이상 개나리는 계속 그 언덕에 필 것이고, 한 해마다 늘어갈 후배들이 노란 꽃을 보며 18살에 멈춰있는 동생들을 생각했으면 한다. 4월 한 철에만 흐드러지게 폈다가 지는 노란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날마다 기억할 수 있도록 사계절 내내 피어 있으면 좋으련만.

이지영 기자  easy@kukey.com


* 종단횡단은 고대신문 정기자가 쓰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8 07: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