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명강강독] 배종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옛날 일이다. 아마 20년은 충분히 지났을 거다. 문과대학에 원로 교수 두 분이 계셨는데, 이 분들은 법대 교수들을 볼 때마다 법학이 무슨 학문이냐고 힐난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말석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한 분은 철학교수, 다른 한 분은 문학 전공하시는 분이었다. 그 때 든 생각은, ‘이 분들은 법학을 참 싫어하시는구나’ 정도였고, 법학의 학문성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자기 부정을 하기 싫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가운데 좀 더 신랄했던 문학전공 교수께서 자신의 장남을 법대에 보내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원했더라도 최소한 묵인은 했을 터, 이전의 태도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소 냉소적이기까지 했던 철학 교수님은 자신의 맏손자를 법대에 보냈고, 그 아이의 진로를 상담하신다고 내 연구실에 찾아온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넘친 진지한 모습은 내 철학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법학’에 대한 정답은 이 두 분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법학이 학문인가 아니면 기술인가’ 의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막상 현실적으로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비교적 안정적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신망을 받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남학생보다 성적이 좋은 여학생들은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햇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따르는 법, 치러야 할 대가가 왜 없겠는가.

이제는 법대가 없어지고 로스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법조인이 되려면 대학 4년을 졸업하고 로스쿨 등록금을 3년 더 내야 한다. 추가부담이 기회비용까지 합쳐 대략 1억 5천 정도라고 하니 스티브 잡스라면 아마 창업을 했을 수도 있겠다. 졸업 후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올해 기준 50% 중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 비율은 갈수록 더 떨어질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 기준으로 보더라도, 졸업생 절반 정도는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자격증’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30살을 넘기면 다른 취업의 탈출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로스쿨 강의실의 모든 눈은 오로지 ‘변호사 시험’으로 향해 있다. 시험에서 학문을 말하는 사람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격이다. 과장 없이 전하더라도, 그 분위기는 ‘살벌’ 그 자체이다.

그러면 50% 관문을 통과했다고 치자. 그 가운데 법원, 검찰로 갈 사람 몇 나오고, 나머지는 크고 작은 로펌 행, 그도 저도 아니면 교수들이 나서서 여기저기 집어넣어야 한다. 이 일이 또한 보통이 아니다. 로스쿨에는 이를 위한 전담 보직까지 있다. 나는 ‘영광’ 보다는 ‘희생’ 쪽에 더 눈이 많이 간다. 우리 법대가 옛날에 잘 나간다고 할 때에도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이른바 잘 된 법조인의 뒤안길에는 마흔이 넘어서도 학교 주변을 서성대며, 혹시라도 눈길이 마주칠까봐 멀리서 피하는 제자들을 보며 가슴이 아리었다. 모두 어느 한 집안의 소중한 자식들이 아닌가. 전쟁을 하다보면 전사자도 생긴다지만 자기 자식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말하기 좋은 직업과 하기 좋은 직업은 다르다. 법조인 직업이 내 취미에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판사는 주로 돈 받을 사람(민사소송), 죄 지은 사람(형사소송)을 판단한다. 검사는 말할 것도 없이 매일 출근하면 살인, 강도, 강간, 사기 등 각종 범죄자를 기록과 대면으로 만난다. 변호사는 이런 사건에 연루된 사람한테 돈을 받고 법률적인 도움을 준다. 변호사의 최고 미덕은, 기업 하는 사람처럼 ‘돈’이다. 따라서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많이 받아낼수록 유능하고 성공한 변호사가 된다. 이런 일들이 내 취미에 맞아야 한다.

세상에 위험 부담 없는 성공은 없다. 도전 없이 성공하는 사람도 없다. 법조인이라는 직업도 마찬가지, 비용대비 효과, 나와 내 주변의 조건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7 19:3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