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앞 ‘천막노숙 1735일’, 세상은 우릴 잊었나

[노상인터뷰] ‘대학강사 처우개선’ 위해 여의도서 노숙하는 김동애 씨 등 3인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6-10 19:50:53 | 최종:2012-06-11 12:21:30          





출퇴근길,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왠지 빚진 기분에 발걸음이 멈춰 서곤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날을 잡아 ‘그 집’을 찾았다. ‘그 집’은 여의도 국회 앞의 ‘시위 명소’ 가운데 하나인 국민은행 서여의도지점 옆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집’이랄 것도 없다. 화장실도, 주방도, 제대로 된 침구도 없어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 겉에는 비닐을 겹겹이 둘러친 움막 같은 모양새를 한 것이, 태풍이 몰아치면 금세라도 날아 갈 것 같다.  

후배기자와 함께 인터뷰 차 ‘그 집’을 찾아간 지난 6일 오후, ‘그 집’ 주인은 그날로 ‘입주’한 지 1935일째라고 했다. 2007년 9월 7일 처음 이곳에 비닐천막을 쳤으니 햇수로 6년째다. 그 때는 노무현 정부가 끝날 무렵이었는데 어느새 그 뒤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서산에 걸린 해 모양을 하고 있다. 천막 입구에 서 있는, 후드 차림에 사각모를 쓴 마네킹이 빛이 바랠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 건물 도로변에 있는 천막집.  ⓒ 진실의길  

우리 쪽에서 둘, 그 쪽에서 셋, 모두 다섯 사람은 천막 앞 노상에 테이블 하나를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쪽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부부다. ‘집 주인’격인 김동애(66, 여) 씨와 김영곤(64) 씨가 그들이다. 김동애 씨는 대만의 명문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숙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2000년에 쫓겨났으며, 6년째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남편 김영곤 씨는 낮에는 고대 본관 앞 텐트에서 시위를 하며 저녁에는 이곳 천막으로 합류해 ‘외조’를 하고 있다.  

나머지 한 사람 류승완(44) 씨.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서 강의를 하던 그는 지난해 2학기부터 강의 자리를 빼앗겼으며, 현재 성대 본관 앞에서 매일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는 동석하지 못했지만 한 사람 더 있다. 국민대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황효일 씨가 그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강사의 온전한 지위 교원지위 회복과 법정교수 100% 충원’을 요구하며 해를 넘겨 거리에서 비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 옛 시절, 강의자료나 책을 보자기에 싸서 다녔다고 해서 더러  ‘보따리장사’로도 불리는 강사는 석박사 이상의 고학력자인데다 적절한 자리가 나 임용되면 곧바로 ‘교수님’이 될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체 대학강의의 40%를 담당하며 사실상 대학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각 개인으로서는 한 분야의 전문 연구자다. 그러나 교육당국이나 대학측은 이들 미래의 학자들을 키우고 보살피기는커녕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켜 임금착취는 물론 비인간적 대접으로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김 씨 부부의 천막집이 있는 곳에서 국회 까지는 불과 100m,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당사까지는 200m 남짓 떨어져 있다. 그러나 6년째가 되도록 정치권은 이들의 호소와 절규를 외면해 왔다. 비단 정치권만이 아니다. 전국의 대학강사가 13만5000명에 달하건만 이 투쟁대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람은 이들 ‘네 사람뿐’이라고 했다. 이들이 외치는 ‘대학강사 지위개선’ 문제는 정치권은 물론 이미 언론도 포기한지 오래됐다고 했다.  

  
▲ 대학강사 3인과의 노상인터뷰. 오른쪽부터 김동애, 김영곤, 류승완, 필자  ⓒ 진실의길  


오후 5시 반부터 시작된 이날의 ‘노상인터뷰’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마쳤다. 대화를 하면 뭔가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고 갔는데 영 아니었다. 마치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듯 답답하고 안타깝긴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이들 3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전국 대학강사 몇 명이나 되나? 또 이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전국 400개 대학(4년제 180개, 2년제 220개)에 강의하는 강사는 8만5000명, 겸임교수 등 비정규 교수는 5만명으로, 전체 13만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실제 몸을 던져 투쟁에 전념하는 사람은 우리 네 사람뿐이다. 투쟁장소는 이곳 여의도를 비롯해 성대, 고대, 국민대 등 모두 네 곳이다.”  

- 전국 대학강사들의 참여가 태부족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당장 맡고 있는 강의에서 짤릴 것을 두려워한 탓이 가장 크다고 본다. 그 다음은 학교측의 ‘회유’도 한 요인이랄 수 있고, 또 장차 전임교수의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한 이유도 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불이익’을 두려워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대학강사들은 비판할 권리도 없지만 상당수가 자기검열과 노비의식에 쩔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강사’의 법적 지위는 현재 어떤 실정인가? 역사적으로 보자면 진전돼 왔나?
“1977년 박정희 정권 시절 교육법 개악으로 대학교수에서 시간강사를 제외시켜 교원지위를 박탈했다. 이후 별다른 지위회복 없이 지내다가 2007년 4월 대법원에서 강사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교과부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강사에 대해 껍데기만 교원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으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연금법 등의 적용대상에서조차 제외시켜버렸다. 법적으로는 강사도 교원이지만 실지로 대학에서 신분이나 처우 차원에서는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는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다.”  

  
▲ 천막농성 1735일째. ⓒ 진실의길  

- 18대국회의 고등교육법 개정 골자는? 또 재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지난 국회에서 고등교육법 14조(교직원의 구분)를 개정하면서 ‘교원’은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직원, 조교로 규정하고 시간강사를 제외시켰다. 대신 14조의2(강사) 항목을 신설하여 강사의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고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립학교연금법을 적용할 때는 교원으로 보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조만간 시행령을 통해 법정교수의 20%를 계약강사로 대체할 방침이다. 우리는 강사를 교직원으로 대우할 것과 법정교수 100% 충원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 교원 지위가 없는 사람이 강의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 아닌가?
“맞다. ‘무자격자’가 한 강의를 듣고 졸업했다면 그 졸업장은 ‘가짜 졸업장’인 셈이다. 한 때 서울대생들이 이 문제로 소송을 내려고 한 적이 있다. 헌법 31조6항에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교원지위 법정주의’라고 칭한다. 이에 근거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마땅히 ‘헌법위반’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

- 강사들과 전임교수들의 처우를 월급, 강의시간 등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비교해 본다면?
“서울시내 대학을 기준으로 교수 1인의 연봉이 1억 정도인데 반해 강사는 연봉은 500~600만원으로 교수의 20분의 1, 교직원의 10분의 1수준이다. 또 주당 강의시간의 경우 교수는 6~9시간, 강사는 전국평균 4.2시간으로 전임교수가 강의 60%를, 강사가 40%를 담당하고 있다. 강사가 강의시간이 적은 이유는 강사들이 많다보니 나눈 탓이다. 또 신분(계약)은 교수는 대개의 경우 종신제인 반면 강사는 4개월 단위로 계약하고 있다. 다같이 학위를 갖고 강의를 하면서도 그 처우는 차마 비교를 할 수 없는 정도다.”  

  
▲ 성균관대에서 강사를 하다가 쫓겨난 류승완 박사.  ⓒ 진실의길  


-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는 대학은 주로 어디인가?
“성균관대, 중앙대, 고려대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세 대학은 모두 ‘액센 츄어’라는 다국적 컨설팅기업에서 컨설팅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성대는 ‘비전2020’을 세워 2020년까지 학부 교수 전원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중대는 정규교수 숫자보다 많은 1600명의 강의전담교수를 채용하기로 하고 지난해 100명을 이미 뽑았다. 중대 역시 학부교수 전원을 기간제 교수로 채용할 방침이다. 참고로 성대는 1998년 삼성이, 중대는 2010년 두산그룹이 인수한 이후 이런 작업이 급속히 진행됐다. 끝으로 고대 역시 강의전담교수(기간제) 채용에다 강좌수는 줄이고 수강생은 늘리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안다.”  

- ‘성균관대 비전 2020’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며, 왜 문제인가?
“신임교수를 전부 1년 계약제 교수로 뽑는 것을 비롯해 인문학 연구 축소, 교수임용권을 기존 학과에서 대학본부로 이관해 학과의 자율성을 없애고 나아가 실용중심의 기능대학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골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대학의 비판적 학풍을 제거해 진보적, 민족적 성향을 모두 말살시키게 된다. 대학사회에서는 성대를 ‘뉴라이트 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박근혜 비대위 시절 비대위원을 2명이나 배출한 바 있다.”  

- 이럴 경우 학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실익(금전 등)이 있고, 반면 사회적으로는 또 어떤 문제점이 있나?
“전국 400개 대학의 연간 등록금 규모가 50조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임교수 대신 계약강사를 쓸 경우 1인당 대략 7~8000만원가량의 금전적 이득이 생긴다. 그 다음은 학생들의 비판의식을 무디게 만들어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그를 통해 현행 비싼 등록금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아울러 모기업에 필요한 인력공급을 위해 대학을 마치 직업훈련소처럼 활용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대학의 공공성은 사라지게 되고 마침내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요구사항 가운데 ‘일반대학원에 전임교수를 두라’는 것도 있었는데 어떤 취지인가?
“학부교수가 대학원 강의도 맡고 있다 보니 교수도 혹사할 뿐만 아니라 논문지도 등이 부실한 실정이다. 보통의 경우 교수 1명이 대학원생 7~8명의 논문지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지도’라고 할 수도 없다. ‘논문표절’로 물의를 빚은 문대성 같은 사람이 나온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일반대학원에도 점임교수 채용이 시급한 실정이다.”  

- 방학 중에 강사료가 없으면 어찌 사나?
“달리 방법이 없다. 절약하거나 빚내거나 강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방법뿐이다. 주변에서 보면 자녀가 고교나 대학갈 때까지 버티다가 더 이상은 못배겨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대학에서 ‘강의준비금’ 명목으로 소액을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10개월치를 12개월로 나눠주는 형식이어서 그게 그거다.”

  
▲ 김동애 씨의 국회 앞 '1인시위'  
- 퇴직금은 있나?
“사실상 없다. 소송하면 받을 수는 있지만 그리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 강사들도 전공마다 차이가 있나?
“있다. 아무래도 인문학 분야가 가장 열악한 편이다. 공대나 경영대의 경우 강사를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 국가인권위나 노동부(‘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는 도움 주는 것 없나?
“2004년 인권위는 강사에 대해 신분보장과 적절한 물적 급부를 주라고 권고한 바 있다. 노동부는 금년부터 대학에 강사들도 계약서를 쓰라고 권고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아 강사가 총장을 고발할 경우 5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고대랑 몇몇 대학은 계약서를 부랴부랴 썼다. 두 기관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대학이 버티면 별 소용이 없다.”  

- 정치권과 언론이 이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정치권에서는 이 사안이 표가 안된다고 보는 것 같다. 게다가 대교협 등에서 로비를 세게 하는 것으로 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큰 광고주다. 우리 언론이 현실적인 이익을 앞에 두고 이를 포기할 만큼 정의롭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 쪽은 정치권이나 언론을 통해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돼 있는 반면 우리 쪽에서는 겨우 우리 네 사람 정도가 이 일에 매달리고 있으니 게임이 되겠는가?”  

- 2010년 5월 자살한 고 서정민 강사(박사)의 논문대필 및 임용비리 건은 사법적으로 처리됐나?
“한교조(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선대 분회장이 “논문대필은 관행”이라고 경찰에 진술했고, 진상조사위에서 ”논문대필이 아니다”고 결론을 내려 해당 지도교수는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또 임용비리 학교로 지목된 한세대와 성화대 역시 “그런 일 없다”고 해서 무혐의 처리 됐다.”  

- 가장 큰 현안은? 앞으로의 투쟁계획은?
“무엇보다도 고등교육법 재개정이 가장 큰 과제다. 그 다음은 강사료 인상과 학부수업의 질 개선이 시급히 개선시켜야 할 과제다. 교수 1인당 법정인원은 인문·사회계가 25명, 자연·예체능계가 20명, 치·의예과는 8명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평균 100명 선이다. OECD국가 평균은 15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 그 외 더 보탤 말은 없나?
“강사들이 서정민, 한경선 선생의 유가족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두 분 모두 강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현장에서 목숨을 던졌으나 ‘열사’라는 칭호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유가족들이 모두 어렵게 살고 있어서 몹시 가슴 아프다.”  

[6년째 국회 앞 천막에서 노숙투쟁하는 노 부부강사]  

  
▲ 천막지킴이 김동애-김영곤(왼쪽) 부부 강사. ⓒ진실의길  

대학강사 처우개선을 위해 6년째 국회 앞 천막집을 지키고 있는 김동애-김영근 씨는 부부다. 대학시절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아연)에서 만나 1975년에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이자 ‘동지’다. 두 사람 가운데 강사생활을 먼저 시작한 건 부인 김동애 씨.

김 씨는 대만의 명문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숙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2000년 한성대 대우교수에서 직위해제(해고)된 이후 12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연구자로서 성공은 못했지만 사회가 준 것을 둘려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이런 투쟁은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오랜 노숙투쟁으로 김 씨는 건강이 악화돼 풍 전조증을 세 차례나 겪었으며, 혀가 굳고 안면이상 증세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냉동기술자로 대우중공업에서 근무하다가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 김 씨는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현재 대학에서 노동문제를 강의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투쟁대열에 동참했다. 현재 고대에서 주3시간 강의를 하며 월 40만원을 받고 있는 김 씨는 충남 당진에 있는 집과 고려대 텐트, 이곳 여의도 천막을 오가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씨는 “두 자녀들을 다 키운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더이상 얻을 것도 손해 볼 것도 없어 이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8 19:2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