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믿기지 않는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물론 전 사회적으로 이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100여 일 동안 가해자와 학교 당국이 보여준 태도는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당할 만한’ 여성은 없다

  한 여학생에게 헤아리기도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 가해자 중 1인은 구속되기 전 동료 학생들을 대상으로 피해자의 인격을 모독하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조사는  “피해자가 문란하다/아니다, 싸이코패스다/아니다.”는 등의 문항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반성은커녕 피해자에게 충격과 상처를 다시금 안겨주는 일을 버젓이 벌였던 것입니다. 지금 “가해자들과 사귀는 관계, 잠자리를 하는 관계”라는 식의 거짓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 측이 병원과 학교에 피해자가 문란하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가해자 측 변호사도 법정에서 이를 사실인양 몰아가며 이런 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마치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몰염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이 세상에 ‘성폭력을 당할만한’, ‘그래도 좋을’ 여성은 없습니다.
  또 지금 가해사실을 부인하는 가해자의 어머니는 피해여학우에게 “너도 끝난 것”이라는 협박을 하고 피해여학우 증인들을 찾아가 항의하는 등 이중의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치않게 주변 친구들과 다른 학교 의대생들에게까지 피해사실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또 가해자 가족들이 집 앞에 계속 찾아와 합의해달라고 강요해 주변에 피해사실이 알려질까 “마음이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충격을 넘어 분노가 이는 일입니다.

                                                  “가해자들이 곧 돌아올테니 잘해줘라”?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학교 당국의 태도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학교는 누구의 편입니까? 누구의 말을 경청하고 있습니까?
  2006년 출교 사태 당시 제대로 된 사실관계 파악도, 기준도 없이 7명을 2주 만에 출교시키고, 징계 사실을 학교 홈페이지 팝업창으로까지 공표했던 학교 당국은 이번 사건에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면학 분위기를 위해”,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진보적 학생활동가 7인을 출교시켰던 학교 당국은 성추행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교화가능성”을 운운합니다. 이는 이중잣대입니다.
  부정하고 있지만 지금 학교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며 가해자를 감싸고 있습니다. 피해여학우에게 징계 과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출교는 법적 문제가 걸린다. 학생처에서 연락이 와서 출교는 위헌이라는 말도 했다. 앞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기를 바란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또 “8월 19일에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가해자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라고 했다는 것을 듣게 됐다고 합니다.
  피해여학우의 언니는 “학교가 우리를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퇴학조치를 내리는 것은 동생에게 학교를 나가라는 소리다”라고도 했습니다. 피해자는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합쳐 5년을 더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가해자와 함께 학교에 머무를지 모른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약해 돌아오는 것은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고 “지금 상황에서는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학업을 포기해서 1년 더 다니면 그 사람들과 마주칠까봐 악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고통스런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금 학교 당국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바로 피해자입니다. 피해여학우가 마치 죄인처럼 학교를 떠나지 않도록 학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피해여학우가 온전히 자신의 권리를 뺏기지 않고 여성으로서, 학생으로서,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원하는 대로 가해자들이 출교돼야 합니다.

                                                     성폭력 재발방지 노력이 필요하다

  절대로 이번 사건이 유야무야 처리되고,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 끝나게 둬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끝나는가는 앞으로 성폭력 사건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피해자가 그토록 강력히 정당한 징계를 요구했는데도, 가해자들에게 온정적이고 미온적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어느 누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용기 내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동료를 성추행하고 이후에도 계속 상처를 줘도 조용히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는 학교가 성폭력 없는 대학을 만들겠다 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떤 징계를 학교가 내리느냐, 어떻게 사건이 해결되느냐는 앞으로 학내 여성들의 권리와 맞닿아있습니다. 징계조차 제대로 내리려 하지 않으면서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제대로 된 노력을 학교가 기울이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제껏 학교는 강의실 내 성희롱 문제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대한 태도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됩니다. 한 인간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주는 성폭력과 이에 관대한 학교에 우리는 결코 관대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나흘 만에 2900여 학우들이 출교 요구 서명운동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피해여학우에게 등돌리지 않고 함께 피해자의 권리를 외치는 수많은 학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소리와 힘이 확대된다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데에 크나큰 힘이 될 것입니다. 성폭력에 관대한 학교에 경종을 울립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 성폭력없는 세상을 향한 논의와 노력들도 함께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44대 문과대 학생회‘같이의 가치’
club.cyworld.com/kunokdoo

*피해여학우 심경관련한 부분은
<손석희의 시선집중> 9/2 피해여학우 인터뷰, 8/30,
<시사저널>을 인용한 것입니다.